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22)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대기업에 다니는 노 과장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춰 회사에서 대대적인 구조 개편과 부서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사업 부문을 아예 접고, 새로운 사업 부문을 신설하는 등 규모가 방대한 개편이라서 어떤 일을 어떻게 담당하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누구에게 물어볼 데도 없어 그저 뚜껑이 열리기만 기다려야 한다.

‘내 전공이나 경력과 전혀 무관한 신사업 부문으로 발령이 나면 어떻게 하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틈에서 과연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새로 만들어지는 부서라면 인수인계는 누구한테 받아야 하는 거야?’

그렇다고 불황과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요즘 안전하고 편안한 다른 회사로 전직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내도 어려운 때일수록 딴 데 눈 돌리지 말고 회사에 잘 붙어 있으라며 기회 있을 때마다 잔소리다. 집에 가면 아내 눈치 보느라 신경 쓰이고, 직장에 가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하느라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답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 보니 요즘 노 과장은 업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일에 능률도 잘 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가 구조 개편과 부서 이동이 이루어지는 사이 아예 자리에서 밀려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밤에도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와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주말만큼이라도 회사 걱정을 내려놓고 편히 쉬면 좋으련만 예민한 성격의 노 과장은 주말 동안에도 내내 걱정을 달고 산다.

‘내가 왜 이렇게 걱정을 사서 하는 걸까?’

생각해 보니 노 과장은 언제나 옆구리에 걱정 주머니를 차고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걱정할 일이 있었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 초창기는 물론 군대에 있을 때도 늘 걱정이 넘쳐났다.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걱정이 없으면, 걱정거리가 없다는 사실이 걱정스러웠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노 과장처럼 걱정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걱정을 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만큼 뭔가 해결책이 나올 것이고, 그러는 사이 문제가 해소되거나 혹은 문제의 무게감이 조금은 가벼워질 거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닌 젤린스키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유형을 분석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이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26%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사소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작 4%만이 우리가 걱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이야기다. 걱정한 만큼 해결에 이를 수 있는 4%를 위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이미 일어난 일, 사소한 일, 결코 바꿀 수 없는 일인 96%의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허무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걱정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내 걱정이 그렇게 쓸모없는 거였구나, 하고 학습이 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다. 지나간 걱정을 돌아보고 성찰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새로운 걱정이 불쑥 다가오기 때문이다. 걱정했던 일이 혹시라도 현실에서 일어나면 자신의 걱정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다.

‘역시 내가 걱정하던 대로 되고 말았어. 미리 걱정하지 않았더라면 더 충격을 받았을 거야.’

반면에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으면 별일 아니라는 듯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대로 되지는 않았네. 현실이 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뭐.’

 

노 과장 같이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걱정을 조절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맨 먼저 하루 한 시간 정도 한 공간에서 ‘걱정 일기’를 써 보는 것이 좋다. 노트를 한 권 마련해서 하루 동안 있었던 걱정거리를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다. 대신 이 시간 외에는 걱정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시로 걱정거리를 달고 살던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걱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걱정 시간은 되도록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서 멀수록 좋다. 걱정하다가 바로 잠자리에 들면 걱정이 이어져 수면을 방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장소도 수면이나 일과 관련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침실이나 일터는 걱정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 걱정할 시간이 아닌데, 걱정거리가 떠오르면 단어만 적어두고 구체적인 걱정은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으로 미룬다. 중요한 것은 걱정거리가 떠올랐을 때 외면하면서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걱정거리가 떠오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중에 걱정하기로 미뤄두는 것이다.

백곰효과(White Bear Effect)라는 게 있다. 1987년 하버드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인 다니엘 웨그너 교수는 독특한 심리실험을 실시했다.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눠 A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라고 지시하고, B그룹에게는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흰곰이 떠오를 때마다 종을 치라고 일러두었다. 종을 친 횟수가 많은 그룹은 어느 쪽이었을까? 의외로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B그룹이었다. 이 같은 심리현상을 백곰효과라고 한다. 특정 생각이나 욕구를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그것이 자꾸 떠오르면서 하게 되는 효과다.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도 한다. 이처럼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걱정거리가 떠오를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미리 정해둔 걱정 시간으로 잠시 미루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걱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습관이 바뀌게 된다.

 

생활습관이 변화하면, 걱정하는 시간과 장소를 본인이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나머지 시간에 업무나 취미나 여가활동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 걱정 일기를 쓸 때는 한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으나, 나중에는 한 시간 동안 걱정거리와 씨름하고 있는 게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걱정을 미루고 통제하고 조절하는 게 몸에 밴 것이다. 거기서 만족하고 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지나면 걱정을 달고 살았던 지난날을 가만히 되돌아보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걱정을 했을까?’
‘아, 그 걱정은 하지 않았어도 되는 거였는데…….’

점점 걱정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작성한 걱정 일기를 보면서 이게 걱정할 만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비로소 자신을 짓눌러 왔던 걱정의 늪에서 빠져나와 걱정 없는 세상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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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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