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정희주 의사]

사진 성격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대개 서른 살이 되면 인성이 석고처럼 굳어져 절대 다시 부드러워지지 않는데, 세상을 위해서도 잘 된 일이다."

 

미국 심리학계의 대부인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성격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성격이 곧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성격을 바꾸어보려고 노력했던,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끝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이란 무엇인가’는 이와 같은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우리의 통념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인 브라이언 리틀 교수는 각 챕터마다 구체적인 성격검사 도구를 제시하여 성격을 구성하는 여러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언뜻 보기에 최신 성격이론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내용 안에는 타고난 성격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며 상황에 맞추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녹아들어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가 먼저 제시하는 개념은 ‘성격의 5대 특성‘이다. 5대 특성은 일련의 검사를 통해 성격의 다양한 측면을 성실성, 친화성, 신경성, 개방성, 외향성이라는 다섯 가지 주요 요소로 나누어 측정하는 것이다. 성격 특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MBTI 검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직관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MBTI 검사와 달리 5대 특성 이론은 과학적 실험과 통계적 분석을 통해 개발되어 훨씬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과학적 신뢰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평가지표가 성격을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다. MBTI는 성격을 유형화하여 피험자를 일정 유형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다. 예컨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온전히 감정에 의존하거나, 모든 것을 이성의 판단에 맡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MBTI는 모든 사람을 감정형 인간/사고형 인간이라는 전혀 다른 두 유형으로 분류해버린다. 반면 5대 특성이론은 성격을 분절된 카테고리가 아닌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표현함으로서 그렇다/아니다 식의 이분법적 분류를 거부한다. 이와 같은 관점의 전환은 개인의 성격에 절대 변하지 못할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책에서 다음으로 소개되는 것은 ‘자기점검정도’이다. 자기점검정도는 개인의 행동이 성격에 영향을 받는지 혹은 상황에 영향을 받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자기점검정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주변 환경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사람은 타고난 성격에 관계없이 주어진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것에 익숙하다. 반면 자기점검정도가 낮은 사람은 자신의 성격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든 본인의 특성과 가치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앞서 제시한 5대 성격특성에 자기점검정도라는 새로운 축을 더하면 우리의 행동을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향적이면서 자기점검정도가 높은 사람이 많은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내향적이라는 성격특성에만 주목한다면 그 사람은 가능한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높은 수준의 자기점검정도를 고려한다면 내향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점검정도를 강조하는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흔히 생각하는 고정된 성격이 상황에 따라 조절가능하다는 것. 사람에 따라 그 능력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책의 말미에 이르면 저자의 주장은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 행동의 동기를 성격, 상황, 목표로 분류할 때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개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마치 삶에서 중요한 질문은 ‘내 성격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어떠한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추가적으로 목표 설정 및 추구를 위한 실질적인 요령들, 예컨대 목표분석법, 목표의 재구성과 같은 방법들이 친절하게 제시되어있어 책을 읽은 독자가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 책의 내용은 과거의 경험이 나의 현재 행동을 결정한다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보다는 인본주의 심리학, 긍정심리학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제시된 추상적 이론들은 ‘정말 타고난 성격에서 벗어나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나의 의구심을 떨쳐주지 못하였다. 아마도 독자를 진정으로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저자의 주장이 관념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리어 내 눈에 인상 깊게 들어오는 것은 저자가 무심결에 적어놓은 듯한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사람들은 왜 자유특성에서 나오는 행동을 하는 걸까? 이유는 많지만, 특히 중요한 이유가 둘 있다. 프로의식과 사랑 때문이다." 결국 일과 사랑이 우리를 바뀌게 만든다는 말일텐데, 평범하지만 결코 공허하지는 않은 말로 느껴졌다.

 

타인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힘들어하던 수줍은 남자도 첫눈에 반한 여자가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용기 있게 고백하곤 한다. 평생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일과 사랑을 얻기 위해 조금씩 변해왔던 것이다. 타고난 성격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기억들을 상기하며 ‘성격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볼 것을 권해본다. 어쩌면 성격으로 규정되어버린 삶의 한계를 넘어설 단초가 이 책에서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노력을 하기, 그리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의식적으로’ 목표에 대해 보상하기. 중요한 내용을 많이 배워갑니다!"
    "근육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