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재수생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대체로 그렇듯이, 고민이 너무 많아져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수험 생활을 하다 보면, 이 노력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면 좋겠죠.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일 테고 또 과제와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할 겁니다. 그렇게 스펙을 쌓아서 직장을 구하고 나면 또 그 직장에서 버텨야 하고요.

그런 식으로 제 앞으로의 삶에 남아있는 의무들이 가끔은 너무나 힘겹게 느껴집니다. 행복은 작고 사소한 거라지만, 고작 그런 순간의 기쁨을 위해서 그 모든 버거운 것들을 전부 견디며 살아야 하는 건가 싶어요.

 

게다가 이 세상에서 버티기에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고, 외모가 특출나지도 않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요.

명문대에 교수 자식이 인맥으로 부정입학했다는 기사 같은 걸 보면, 부조리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들어요. 다들 그렇게 제가 가진 걸 휘두르면서 살고 있는데 별것도 없는 제가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봤자 이미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힘드네요.

물론 저도 공부할 환경이라도 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아무리 힘들어봤자 다시 태어날 수도 없으니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살 의욕이 안 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수험 생활에 지쳐서 그런 걸까요... 저도 밝고 긍정적이고, 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네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힘겨운 고비를 맞이할 때 그 단계를 넘어서든 넘어서지 못하든 허탈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글쓴이분이 준비하고 있는 대학입시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지요. 준비가 잘 되지 않거나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이내 내가 왜 이것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을까 하며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실 삶의 매 순간을 기쁨과 충만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끊임없이 앞으로 올 미래에 불안함을 느끼고,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감을 가지며 과거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무력감 역시 자주 느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씩 우연치 않은 기회에 삶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고 그것에 기대어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텨냅니다. 다음번에 올 짧은 기쁨을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글쓴이분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지만. 지금의 마음의 상태는 지나치게 무겁고 복잡합니다. 안 해도 될, 해도 소용없을 걱정을 하느라 남들보다 훨씬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일단은 마음을 정갈하고 단순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순간에만 집중하고 내일, 한 달, 일 년 후의 일은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갖은 상념과 걱정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닐 때 이를 밀어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먼저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며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이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내면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념이 사라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내려놓는 태도 역시 중요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적었지만 이에 앞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수험 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느라 얼마나 많이 지쳐있는지를 인정하고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에 밝고 긍정적이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밝고 긍정적인 것은 결과적인 따라오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잘하고 멋져서가 아니라, 내가 어떠한 것이 부족하고, 못나보여도, 그럼에도 사랑하는 태도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시험과 수험생활을 겪어왔기에 글쓴이분의 지금 상황이 더욱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부디 지금의 시간을 현명하게 해쳐나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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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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