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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이 지난 감정의 기록 - 싸이월드 폐쇄를 앞두고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7.25 03:08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싸이월드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2019년의 어느 날, 청춘시절에 남긴 사진과 글들을 백업받기 위해 나는 15년 만에 나의 미니홈피를 방문했다.

충격적이었다. 그곳에는 깡마르고 스포츠머리를 한 풋내기 의대생이 머리에 한껏 젤을 발라 멋을 내고 쏟아낸, 그때 당시에는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한 중2병 감성 멘트가 가득했다. 쪽팔림에 몸부림치던 나는 이 기록을 영원히 세상에서 말소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클리닉에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생활이 의도치 않게 외부에 공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공개당하고 조리돌림 당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공유한 사생활이 박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자신의 진면목을 누군가 알아달라며 간절히 남기고 공유하고자 했던 이들이 이제는 잊힐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이에 편승하듯 2020년 3월에는 세계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에서 자신이 작성한 멘션이 24시간 후 사라지는 새 기능 ‘플릿’을 선보인다. ‘플릿’으로 작성한 멘션은 타임라인에 남지 않고 영원히 사라진다. ‘좋아요’를 남기거나 답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게시물이 일정한 시간 동안만 나타나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컨셉을 선보인 것은 트위터가 처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이미 업로드 후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스토리’라는 기능을 서비스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에 서비스되고 있던 ‘피드’와 맞먹을 만큼의 활용도를 보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기능의 큰 줄기는 ‘기억’의 ‘공유’이다. 나의 일상의 순간을, 나의 생각이 명멸하는 순간을 글이나 그림 등의 형태로 기억하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표현하고 싶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공유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몇 번의 타이핑과 클릭만으로 나의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연결과 표현, 그리고 인정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취향을 말 그대로 저격했다.

 

영원성(기억)과 무한의 연결성(공유)을 모토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에 이제는 역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무한을 제한으로 되돌리는 서비스가 탄생하였다. 놀라운 일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꽤나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소통과 자기표현에 질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스토리나 플릿을 이용하기보다는 서비스를 탈퇴하는 것을 택했을 테니. 소통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영원보다 순간을, 과거의 나보다는 현재의 나를 선택했다면 이들의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내가 이해받고 싶은 진정한 나는 영원 속에 박제된 기록 속 ‘사물로서의 나’가 아니라 지금 이 곳에 살아 숨 쉬는 ‘주체로서의 나’이다.”

 

1937년 미국의 신경해부학자 제임스 파페츠는 광견병에 걸린 개가 강렬한 공격성을 보이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인수공통 바이러스인 광견병 바이러스는 숙주의 해마를 공격하였고 해마를 자극당한 개는 그 즉시 강력한 불안감과 공격성에 시달렸다. 이를 본 파페츠는 자신이 감정의 중추를 발견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해마와 시상하부, 대상회 피질, 편도 등을 연결하는 일련의 이 회로를 자신의 이름을 따 파페츠 회로(Papez Circuit)라 명명하였다.

이때의 그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발견한 ‘감정의 중추’가 사실은 ‘기억의 중추’이기도 하였다는 것을 말이다. 훗날 뇌과학자들은 후속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억과 감정은 기억이 감정을 자극하고, 감정이 또다시 기억을 자극하는 순환적인 구조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싸이월드에 기록된 자신의 감정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특별하다고 믿었던, 갬성에 취한 요상한 머리 꼴의 20대의 청년도 분명히 나였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기록하고 싶었던 것은 그딴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보존하고 싶었던 것은 당시의 내 내면에 비친, 나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는, 끝장나게 멋있고 감성적인 나의 모습이리라. 

싸이월드에 남겨진 그때의 나의 모습은 나에게는 더 이상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남은 것은 풋내와 촌스러움이 가득했던 그 날의 껍데기뿐이다. 그래서 나는 삭제하였다. 내가 올렸던 감성 넘치던 그 게시물은 지금에 와서는 내가 원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던 것이다. 파페츠의 발견이 우리에게 알려주듯 기억은 감정과 함께하기에 우리에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한때 카메라와 필름 업계를 지배하고 있던 코닥은 인생에 한 번쯤은 있을 법한 기록하고 싶은 빛나는 순간을 자사의 이름을 따 ‘코닥 모멘트’라 불렀다. 이들은 순간이 영원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인간은 점차 찍힌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진정한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필터를 이용하여 색감을 조절하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사진을 보정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의 사진과 글이 담고 있는 감정에는 유통기한이 있었고, 그 불꽃과 같은 감정적 아름다움은 말 그대로 순간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기록에 제3의 개념을 넣었다. 사진과 글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의 분신은 실제와 동등한 순간으로써의 가치를 손에 넣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가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반영한 나의 사진과 글들 또한 순간적이어야만 한다.

감정의 유통기한이 지나 변질된 나에 대한 기록은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뱀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누군가 그 껍데기를 들고 흔들며 이것이 나의 진짜 모습인양 착각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은 친절하게도 영원을 다시 순간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마련하였다. 

 

나는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나의 일상을 한껏 보정한 사진과 하루만 지나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릴 감성에 찬 멘트를 올린다. 20년 후의 내가 이 기록을 보면 이불을 발로 차며 후회할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게시물은 24시간 한정이니까.

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바꾼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인간은 결심하였다. 영원을 다시 순간으로 되돌리기로. 자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도 같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그리고 다시 순간으로.

 

<이 글은 남성잡지 에스콰이어 2020년 7월 호 Journal에 ‘왜 지워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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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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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전체보기
  • wine 2020-07-28 13:27:54

    시간이 많이 지난이후 생각이 났는데, 사이월드 사진은 못 찾는 건가요?? ㅜㅜ   삭제

    • 재밌네요 2020-07-27 09:41:39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삭제

      • Francis 2020-07-25 22:09:49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흥미로운 통찰입니다.   삭제

        • Eugene 2020-07-25 22:00:32

          잘 읽고 갑니다.^^
          불꽃같은 순간의 감정..
          단지 소셜네트워크에 배설해버리고 싶은, 똥을 쌀 뿐이다라고만 생각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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