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아버지께서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병간호하셨던 엄마가 죄책감도 느끼셨다가 병원 의료진 원망도 하셨다가... 너무 힘들어하세요. 

엄마 성격이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친구가 많은 건 아니고요. 아빠랑 둘이 평생 베프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같이 산책 다니고, 닭살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다정하게 지내셨어요. 4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라서 친구나 남매처럼 잘 지내시던 분들이었어요. 아마 진짜 허전하고 허무하고... 그럴 것 같아요.

수술 잘 된 다음에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서 돌아가신 거라... 너무 속상해하고 억울해하시고.... 어떤 감정일지 글로 표현이 안 되네요. 지금은 의료사고 가능성 등 다른 걸 따지고 싶기보다는 엄마가 너무 걱정됩니다. 아버지 연세가 적진 않지만 돌아가시기엔 좀 일러서 어머니가 좀 더 살아달라고 계속 안타까워하셨어요...

저도 정말 속상해요. 장례식 이후, 엄마는 작은 일에도 갑자기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짜증 내거나 인상 쓰면서 말하더라고요. 제가 엄마의 병간호를 잘 알아주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 엄마 정서를 잘 치유해 줄 수 있을지.

장례식 지난 지 한 달도 안 돼서 그런지... 엄마가 갑자기 아빠가 했던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아빠 그리워하셨다가도 저랑 얘기할 때는 또 화내기도 하고요... 저는 그냥 오늘도 갑자기 그렇게 짜증 내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엄마가 저에게 짜증 내고 화를 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계속 들어주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 멈추는 걸 권유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본인에게도 견디기 힘든 슬픔일 텐데, 어머니의 불안정한 정서 상태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더욱 크실 것 같습니다. 와중에도 어머니의 정서를 어떻게 잘 치유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신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왔던 배우자를 사별로 떠나보내게 될 때, 현실의 배우자는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 속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는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고 붙잡으려 합니다. 내면에서 그 배우자를 놓아주는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러우며 그 과정에서 강렬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곧 애도의 과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어머니의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동안의 고마움, 서운함, 혹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며, 이러한 감정들을 바깥으로 표출해야만 상실을 수용하고 현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억누르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은 괜찮을 수 있지만 수년, 수십 년간 마음속에서 배우자를 떠나보지 못하고 힘겨운 삶을 지속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어머니께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슬퍼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하는 섣부른 위로나 충고의 말은 아마도 어머니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어머니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면 왜 그런지 담담히 물어보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툼이 지나치게 격해질 것 같다면 차라리 마음이 식을 수 있도록 몇 분, 몇 시간이라도 시간을 두고 다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금 어머니의 감정 상태를 보면, 분노와 짜증은 들어내지만, 슬픔이나 미안함, 두려움 등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너무나 강렬하고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화나 짜증을 내면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어머니께서 분노뿐 아니라 억제돼있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면 식사나 수면, 규칙적인 신체 활동과 외부활동이 좀 더 용이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울러 어머니뿐 아니라 글쓴이분 자신도 잘 보살피어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부디 힘든 과정을 잘 헤쳐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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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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