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사연) 

스물 후반입니다. 인생을 의욕 없이 살아와서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더 나락으로 빠질 뿐이라서 힘을 낼 수조차 없어요. 공부하고 싶어도 어차피 안될 거라는 생각에 그냥 포기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잘 다니는데 저는 최저시급 받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평생 최저시급을 받고 일할 거라는 생각에 그냥 빨리 늙어서 없어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정말 안 되지만 그냥 노인들과 인생을 바꿔도 미련이 없어요. 너무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이 나서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회피하며 살아온 결과라서 다 제 잘못인데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제가 상상한 스물 후반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싫고 인생을 다시 살고 싶습니다. 친구들과의 삶이 너무 비교돼서 만남을 피하게 되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친구도 모두 떠나가 버릴 것 같아요.

자격증 공부라도 해보고 싶은데 시작이 너무나 힘이 들고 사실 몇 년 전부터 기억력이 너무 안 좋아져서 암기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냥 글씨가 떠다니는 느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그냥 들은 기억이 잘 안 나고 잘 잊어버립니다. 일할 때도 들은 것을 메모해놓지 않으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행복감을 느낀 지도 오래됐습니다. 뭘 해도 행복하지 않아요. 제가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뭘 해도 저는 항상 나쁜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더 나빠질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나이도 많은데 다른데 이직할 수도 없고 내세울 스펙도 없고 평생 이렇게 살 생각하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아요.

사실 그만 살고 싶은데 무서워서 시도는 못 할 거 같은데 뭘 해야 조금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도와주세요.
 

사진_픽셀


답변)

사연을 주신 분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의 우울감으로 힘들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좌절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기분이 침체되고, 불행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가 지나치고 일상생활에 많은 장애를 초래하면 우울증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해주신 집중이 안 되고,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으며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계시다는 점은 우울한 사람들이 자주 호소하시는 부분입니다. 사람이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내면에 부정적인 생각들이 습관화되어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동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자기 자신, 미래, 주변 환경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고방식이 반복되게 되는데, 사연을 주신 분의 상황은 지금 그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상상했던 내 모습과 다른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남들과 비교를 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이 아파지는 것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비교하는 습관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족하고 지내기보다는 모자란 부분에 집착하게 되고, 우울감 혹은 자존감의 저하만 가져올 따름입니다. 그런 결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하지만 비교를 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고려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비교를 하는 것이 단순한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등은 비교 과정에서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결과를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교에 대한 생각에 오류가 있다면 비교를 통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도 내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연을 주신 분 지금 우울감을 넘어서 우울증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우울감에 대해 적절한 진료를 받아 보시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할 정신적인 여유가 생길 때, 비교로 인해 어려워하는 내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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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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