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신분석과 분석적 정신치료

사진 : MTAPhotos 제공

“또다시 어젯밤은 온통 뜬눈으로 지새웠어요. 때론 도대체 밤이란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저를 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 모든 게 그저 길고 긴 끔찍한 하루로만 보여요.”

- 마릴린 먼로가 랠프 그린슨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비록 스크린에 비춰진 배우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의 모습은 화려했을지 몰라도, 그녀의 진짜 이름 ‘노마 진 모텐슨 Norma Jean Mortensen’으로서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는 떠나고 없었고, 어머니는 아기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겨우 12일 만에 양부모 손에 맡겨졌다. 유년시절은 더욱 끔찍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잠시 함께 살던 친어머니가 정신병 요양소에 수용되자 (우울증이었다는 설과 조현병이었다는 설이 나뉜다) 수많은 위탁가정과 시설을 떠돌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학대를 받고 몇 차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 그녀는 대중들이 원하는 ‘금발의 섹스 심볼’ 이라는 이미지, 즉 마릴린 먼로라 불리는 '거짓 자기'를 뒤집어 쓴 채 살아가야만 했다. 내면은 점점 더 심적 고통에 압도되었다. 영화 ‘7년만의 외출’을 촬영할 무렵에는 이미 극심한 불안으로 인해 대사 한 줄조차 제대로 연기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릴린은 알코올과 수면제에 의존했고, 정신분석 치료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1955년부터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는 1962년까지 그녀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에게 정신분석치료를 받았다. 이들 가운데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 Anna Freud 와 UCLA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 랠프 그린슨 Ralph Greenson 도 있었다. 마릴린은 특히 그린슨 박사를 두고 자신의 ‘구세주’라고 부를 정도로 의존적이었다. 그린슨은 그녀를 '경계성 편집성 중독적 인격 borderline paranoid addictive personality'으로 묘사했다.

불안정한 정서와 주체감의 혼란, 만성적인 공허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경계성 인격장애는 비교적 흔하지만 치료되기는 대단히 어려운 정신과 질환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일시적인 증상을 조절하는데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기는 하나,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치료를 우선으로 두고 약물치료를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신분석은 1896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자유연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된 치료법이다. ‘자유연상’이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정신분석의 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일주일 중 수차례, 환자는 정해진 시간에 진료실을 찾아와 카우치라 불리는 긴 의자에 눕는다. 머리 뒤편 시선이 안 닿는 곳에는 분석가가 앉는다. 환자는 자유로이 연상하고 말로써 표현한다. 분석가는 이를 듣고 환자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무의식적인 주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룬다. 진료실이라는 무대 위에 펼쳐지는 한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이 함께 알아 나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보통 수년이 걸린다.

분석적 정신치료는 이보다 간소하다. 환자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진료실을 찾아 치료자와 서로 마주보며 대화한다. 자유 연상을 사용하는 방식은 마찬가지이나 기간은 수개월에서 수년으로 정신분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앞서 이야기한 경계성 인격장애나 그 밖의 인격장애, 불안장애, 전환장애, 우울감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정신분석 혹은 분석적 정신치료를 생각해 봄직 하다.

이 치료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기에, 신뢰할 수 있고 자신에게 알맞은 치료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정신과 전문의가 정신 분석가나 분석적 정신치료자가 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수련과정이 필요하다. 분석적 전통에서는 치료자의 내적인 문제가 크면 클수록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에도 맹점이 생긴다고 간주하므로, 치료자 스스로가 다른 분석가에게 몇 년간 분석을 받는 과정이 존재한다. 아울러 정신치료라는 큰 틀 안에서도 수련 배경에 따라 취하는 입장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므로 치료자를 결정할 때에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정신분석의 효과나 이론적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과학 철학자 카를 포퍼 Karl Popper 는 "정신분석은 객관적으로 검증될 수 없으므로 과학이라 할 수 없다."고 비판하기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제럴드 클러먼 Gerald Klerman 이나 오토 컨버그 Otto Kernberg 와 같은 치료자들은 경험적 데이터와 통제된 실험결과를 토대로 치료법의 효율성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응답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근래에는 정신분석 이론을 좀 더 과학적인 언어로 검증하고 다시 쓰려하는 신경정신분석 neuropsychoanalysis 의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신분석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에 관해서는 필자의 이전 기사 "꿈은 거품일까?"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57] 에서도 일부 소개한 바 있다.

"여전히 정신분석은 가장 조리 있게 그리고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우리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신경과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캔델 Eric Kandel 의 말이다.

 

# 다음 기사에서는 '인지 치료'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