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는 지루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똑같은 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좋다.”

사진 픽사베이

앤디워홀이 남긴 어록 중 한마디이다. 수년에 한 번 꼴로 미술관 이곳저곳 할 것 없이 앤디워홀 특별전이 열리고 있지만 매번 전시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가 죽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오늘날에도 그의 인기는 생전보다 더해감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팩토리에서 찍혀 나오듯 반복, 재생산 되는 이미지 속에서, 수없이 제작되는 널린 캠밸수프 깡통에서, 흔한 브릴로 박스에서 사람들은 그의 철학을 찾는다. 팝아트라 명명된 그의 미학을 찾는다.

사실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하였듯, 앤디워홀 역시 스스로 직접 자신의 미학에 대해 시시콜콜 뜬구름 잡는 철학적 의중을 설명한 적은 없다. 위대한 예술가는 평론이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사이를 줄타기하듯 오가며 연예인처럼-예술가처럼 살다간 워홀의 작품과 삶의 흔적들 또한, 수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수없이 분석되고 연구되어 왔다. 반복되며 재생산되는 그의 이미지 속에 숨은 철학을 파헤치기 위해, 그의 이미지들은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의 복잡한 철학으로 덕지덕지 기워져 왔다. 그리고 그 얼기설기 기워진 이음새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롭게도 정신분석과의 접점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비평가인 할 포스터(Hal Foster)는 팝아트의 본질을 라캉의 말로 표현하며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외상적 리얼리즘’이라 해석했다. 앤디워홀은 현대 사회의 몰개성과 차가움에 상처 받은 외상적 자아를 대표하여, 스스로 현대인의 외상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상을 재현하며 충격 받은 주체의 실재를 귀환시킨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서 말이다. 라캉은 무엇이고 반복을 통한 리얼리즘은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의 핵심이 녹아들어 있다.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역동정신치료의 핵심은 ‘전이’ 감정에 있다. 전이란 아동기 동안에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느낌, 사고, 행동 유형이 현재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전치된 것을 이야기한다. 과거 무섭고 엄한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두려운 마음은, 나중에 그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엄한 직장상사 앞에서 과도하게 움츠러들게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가 직장상사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전이란 판박이처럼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이라 하였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은 사라지지 않고 판박이처럼 똑같이 되풀이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한 외상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상처받은 주체를 지배한다. 그리고 바로 정신역동치료 과정 중에서 치료자는 환자가 치료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 전이 감정에 주목한다. 정신치료는 끊임없는 전이의 반복이다. 외상의 반복이다. 전이는 환자 스스로 무의식 속 상처 받은 자아를 드러내지 않으려 가리는 방어기제로 사용되지만, 부단히 반복되는 전이 속에 외상의 주체가 드러나게 된다. 전이로 반복되는 외상적 경험 속에서 드러나는 상처 받은 주체의 본질에게 치료적 중재가 일어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라캉은 실재를 가리는 회귀, 재귀, 되풀이를 뜻하는 ‘오토마톤’과, 오토마톤에 가려진 실재와의 만남인 ‘투케’를 이야기하였다. 실재는 항상 오토마톤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애초 투케의 기능은 트라우마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따라서 오토마톤은 투케를 가리는 스크린으로 작용하지만, 결국 스스로 이차적 외상을 산출하며 펑툼(punctum)이 이를 뚫고 실재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앤디 워홀이 반복되는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외상적 리얼리즘’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자본이 감성을 파괴하며, 독창성보다 상업성이 주목 받는다. 상업성은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고 이는 몰개성을 우상화한다. 이 몰개성과 비감성, 차가운 공장 생산 제품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린 자아는 상처 받는다.

앤디워홀의 반복되는 이미지와 실크 스크린을 통한 작품의 ‘생산’은 개성을 파괴한다. 몰개성으로 개성을 창조한다. 대중들에게 이를 드러냄으로써 상처받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반복시킨다. 반복된 이미지로 표현되는 외상의 주체를, 다시 반복을 통해 재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워홀의 반복은 두 가지 의미로 우리에게 매스미디어 사회의 외상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의 이미지는 맹목적 반복과 공장 생산이라는 현대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자동화에 대처하기 위해 그 스스로가 자동화 되었다. 반복을 통해서 말이다. 유니크(unique)함에서 팝(pop)으로 이행하는 모습으로 현대사회의 차가운 상업성을 현신하여 드러낸다.

전이로 인한 투사적 동일시가 환자에게 방어기제로 작용하듯, 반복은 ‘의미를 빠져나가게 하는 동시에 어떤 감정이 생겨나게 하는 것에 대한 방어’로 작용한다. 오토마톤에 의해 투케는 가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반복은 무의식 속 외상을 반복적으로 재경험하게 하는 과정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상처받은 자아를 드러낸다. 여기에 워홀의 반복이 보여주는 그 두 번째 의미가 들어있다. 단순한 외상의 재경험을 뚫고 그 안에 숨어있던 상처받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복되는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뚫고 나오는 펑툼(punctum)의 틈으로 우리들의 그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종종 매스미디어 문화에 편승한 예술을 가장한 장사꾼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매스 미디어의 몰개성과 일률성을 비판하고 계몽해야 할 예술의 직분을 잊고 거기에 영합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 포스터는 프로이트의 라캉의 정신분석을 차용하여 그를 변명해주고 있다. 앤디워홀의 작품이 외상적 리얼리즘을 통해 ‘차갑게 비판하는 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산처럼 쌓인 수프 깡통이 전시회 갤러리에 올라서고, 그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되어 액자에 걸린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 받은 마음 속 어린아이와 조우할 수 있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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