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정신의학 역사 만화

 

 

 

 

 

 

 

 

 

 

 

 

 

 

 

 

 

 

 

 

 

 

 

 

익명의 정신과의사 H (존 프라이어 교수)의 발표문 전문. (번역: 려원기)

1972년 5월 2일 미국정신과학회 APA 제125회 연례 학회

 

감사합니다. 로빈슨 선생님.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 학회장에 계신 거의 대부분의 분들처럼 저도 APA의 회원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 회원이라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저인 동시에 하나된 우리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저뿐만이 아니라, APA에 가입되어있는 저의 동료 게이 회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이 학회가 열릴 때 우리는 별도로 또 다른 모임을 가지는데, 뭔가 좀 그럴듯한 별칭으로, Gay PA라 불러오고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이 모임에 앞서,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일어나 여러분께 경청과 이해를 구할 때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말입니다.

오늘 밤 저는, 여러분들이 저라는 인물로 살아가는 특정인을 떠올리지 못하게끔, 제가 주저하지 않은 채 말할 수 있게끔, 가면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여러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 학회에 등록한 200명이 넘는 정신과 의사들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제 정체가 궁금한 분들이 계시겠지만 (다니엘 슈레버나 로버트 나이트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부디 편집증의 위험을 무릅쓰지는 마십시오. 제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동성애자 정신과 의사들은 우리가 “검둥이 nigger” 증후군이라 지칭하는 것과 비슷한 여러 가지 일들과 끊임없이 맞닥뜨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중 몇 가지를 묘사할 것이며 우리가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동성애자인 정신과 의사로서 우리들은, 우리가 놓여있는 처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고위 교수직을 얻고자 한다면, 동료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돈을 벌고자 한다면, 혹은 정신분석 연구소에 입학하고자 한다면, 결정권을 가진 인물들로 하여금 우리의 성적 기호와 성적 정체성을 짐작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백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밝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들의 처지와도 흡사하게, 우리는 비밀이 탄로 나지 않도록, 우리의 불행한 운명이 감춰진 채로 있을 수 있도록, 우리의 진짜 친구들 즉 우리의 진짜 동성애자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비추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정신분석 수련 기간 동안 교육 분석가에게 자신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못 한 채 수련을 끝마치고서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잃을 것이 거의 없는 이들만이 기꺼이 공공연히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간과됩니다.

동성애자인 정신과 의사들로서 우리는 주변 사람의 건강 여부를 판정하는 권한, 우리 손아귀에 놓인 그 권한을 사려 깊게 살펴야만 합니다. 특히나 세상 속에서 건강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우리들만의 특별한 이해로 마음속에 분명히 새겨 두어야만 합니다. 비록 세상은 그러한 명칭을 불가능한 시대착오적 관념으로 바라볼 테지만요. -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동성애자인 동시에 건강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동성애자인 정신과 의사이기에 겪는 또 다른 일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이성애자들에 비해 더욱 “건강할 것”을 요구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우리는 치료나 정신분석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런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여전히 실패감에 사로잡히며 그 “문제”라는 것은 계속해서 남아있을 뿐입니다. 마치 흑인이 슈퍼맨 노릇을 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게이임을 아는 동료들과 마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해야만 합니다.

오늘 밤 남아계신 분들께 이와 같은 사례들을 수없이 열거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 하는 게 유용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서를 뒤집어 볼까 합니다. 정신과의사이기도 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부분의 우리 Gay P.A 회원들은 Bayou Landing (이곳 댈라스에 있는 게이 바입니다.)이나 지역의 canal bath에 출입할 때 정신과 학회의 배지를 달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정신과의사가 아닌 동성애자들 모두로부터 조롱당할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동성애 사회 내에는 정신과의사들을 향한 심히 부정적인 감정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분노한 이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우리 정신과의사들은 그들이 화를 표출할 때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될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상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여러 장소에서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된 환자나 보조직원 같은 이들이, 우리들을 직업적으로 (더 크게는 사회적으로) 매장하고자 시도할 가능성이 다분히 존재합니다. 사회가 그런 일을 용인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의사인 동성애자들로서 우리는, 부인이나 연인 대신에 병원과 삶을 같이 하는 고유한 능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는 하루에 20시간씩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지냅니다만 만약 병원의 누군가가 “진실”을 알게 되거나 아는 척하기로 했다면, 그 즉시 우리는 말 그대로 씹히고 내뱉어지는 신세가 되어버릴 겁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입니다. 여느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이 감정은 우리를 구체적으로 행동하게 만들 때야만 비로소 값어치를 가집니다. 비록 여러분 모두가 제 이야기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계시지만, 저는 특히나 오늘 밤 참석한 Gay P.A.의 회원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를 여러분의 게이 정신과의사 친구들에게 이해시켜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동료가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사람이라면, 한가하게 서서 바라보고만 있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직업을 포기하지도 마십시오. 약간의 창조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여러분 동료로 하여금 스스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만 할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반드시 상기시켜 주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동성애자 동료가 치료를 요청해 온다면, 여러분 스스로의 문제가 이에 영향을 끼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환자들에게 그들이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방법을 만들어 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이 가진 편견과는 또 다른, 다양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게 알려주십시오. 그리한다면 동성애자는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발적으로 용기를 내십시오. 동성애를 바라보는 동성애자 및 이성애자들 모두의 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에, 동성애자인 정신과의사로서 당신이 적절히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잃을 것들이 있습니다. 교수직 후보에서 제외될지도 모릅니다. 아랫동네에서 진료하는 분석가는 여력이 없더라도 더 이상 우리에게 환자를 소개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스승은 우리로 하여금 휴식을 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가 지닌 온전한 인간성으로 살아가지 않음으로써 말미암아 보다 더 큰 위험과 맞닥뜨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그 모든 교훈을 떠안고서 말입니다.

우리에게서 진실한 인간성을 빼앗아가는, 가장 크나큰 상실입니다. 그리고 이 상실은 우리 주변 사람 모두로부터도 어느 정도 인간성을 앗아갑니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동성애를 마주함에 있어 진정으로 거리낌이 없을 때 비로소 그들은 우리 정신과의사들을 스스럼없이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기술과 지혜를 사용하여, 동성애라고 하는 인간성을 이루는 작은 일부분을 그들과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하도록 도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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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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