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을 통해 바라본 꿈

"Ah! böwakawa poussé, poussé"

정신과 의사들이 얼핏 보았다면 신어조작증 Neologism, 신경과 의사들이었다면 착각성 실어증 Jargon aphasia 이라고 묘사하였을 법한 이 이상야릇한 문구는 존 레논 John Lennon 의 곡 #9 Dream 에 등장하는 후렴구이다. 그는 이를 두고 자신이 꾼 꿈속에서 등장한 문구를 가져다 쓴 것이라 밝혔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영(靈)들이 춤추는 광경이 펼쳐지는 환각적인 꿈속 경험을 바탕으로 곡이 완성되었다고 존 레논은 회고하였다.

예로부터 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 왔다. 어떤 이들은 꿈을 예언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낡은 집에 들어가 서까래 셋을 지고 나온 이성계의 꿈을 두고 왕이 될 것이라 해석한 무학 대사의 일화나, 꿈에 나타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형상 (오우로보로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벤젠의 분자 구조를 풀어낸 아우구스트 케쿨레 August Kekulé 의 일화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꿈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꿈은 정신활동의 한 형태로 늘 인류의 곁에 있었지만, 꿈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고자 하는 노력은 19세기 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프로이트는 꿈에 의미가 담겨 있으며 꿈을 통해 무의식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꿈이란 의식 수준에서 용납되기 힘든 여러 가지 본능적 욕구나 무의식적 소망들이 정신적 방어기제들에 의해 왜곡, 변형을 거친 후 억눌려 나타난 일종의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최종 산물인 발현몽, 즉 꿈 내용 그 자체 (manifest dream) 를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본디의 무의식적 내용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소망들이 꿈속에서는 위장된 형태로 등장하기에 꿈꾸는 이가 각성하지 않고 계속 잘 수 있다고 여겨, 그는 꿈을 '잠의 수호자'라고 일컬었다.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프로이트의 설명들은 한동안 심리학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주된 관점을 이루게 되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주)

개봉 이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에서는 이러한 고전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설정들이 보인다.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꿈이 촬영되는 장면을 살펴보자. 무대 위에서 꿈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현실 왜곡 필터라는 장치를 통해 카메라 속에서 그럴 듯한 현실적 모습으로 바뀌어져 나타난다. 무대 위에 난입한 '기쁨이 일행'은 꿈 제작사 내의 경찰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한편 '기쁨이 일행'이 무의식의 동굴에 갇혀 있던 피에로 괴물을 꿈의 무대로 이끌고 나오자 결국 라일리는 놀라 잠에서 깨고 만다. 이는 꿈 속 위장과 검열, 잠의 수호자로써의 꿈의 기능을 역설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기본 골자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정신분석적인 꿈 이론은 하나 둘씩 심각한 도전을 맞닥뜨리기 시작한다. 1953년 아세린스키 Aserinsky와 클라이트먼 Kleitman는 신속안구운동수면, 즉 REM 수면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들은 REM 수면 동안의 뇌파가 각성상태와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REM 수면이야말로 꿈꾸기의 생리학적 상관물일 것이라 추측하였다. ‘REM 수면 ≒ 꿈꾸기’로 가정한 것이다. 10여년 뒤 미셸 주베 Michel Jouvet 는 고양이 연구를 통해 뇌교에 큰 병변이 생길 경우 REM 수면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 입장에 따르면 꿈이란 뇌교에 위치한 어떤 구조물들에 의해 발생하는 생리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셈이었다. 꿈이 무의식적 소망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게 되자 프로이트의 꿈 이론은 점점 곤란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마지막 결정타는 1970년대 하버드 의과대학 앨런 홉슨 Allan Hobson의 몫이었다. 그는 뇌교에 위치한 세 종류 신경핵들의 활동에 의해 REM 수면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바탕으로 ‘활성화 - 통합 모델 activation - synthesis model’이라는 과감한 가설을 내세웠다. 수면 중 뇌교에서 올라온 동기적으로 중립적인 (불완전한) 신호들을 전뇌의 여러 부위가 받아 나름 얼기설기 이야기를 엮어낸 산물이 꿈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REM 수면 동안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가 깨어있을 때와는 다르기에, 꿈속에서는 기상 시와 다른 독특한 시각과 감정 그리고 사고를 체험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프로이트식 ‘위장과 검열’ 따위는 실제 뇌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신랄한 공격을 가했다.

신경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꿈 이론은 한때 벼랑 끝에 몰린 듯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를 다시 살려낸 것 역시 신경과학자들이었다. 프로이트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신경과학자들, 이를 테면 마크 솜즈 Mark Solms 와 같은 이들은 뇌교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도 꿈을 꾼다는 점, non-REM 수면 시에도 꿈을 꾼다는 점 등을 들어 결코 REM 수면이 꿈꾸기의 동의어가 될 수 없음을 역설하였다. 그는 오히려 전뇌의 여러 부위들이 꿈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며, 특히나 꿈꾸는 동안에도 현저히 활성화되어 있는 중간피질-중간변연 도파민 계통이야말로 프로이트가 말한 ‘본능적 욕구’에 상응하는 꿈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아직까지 꿈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신경 심리학적 가설들이 갑론을박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시원스러운 정답을 제시하는 일은 요원한 것 같다. 다만 그 대부분의 가설들이 한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바로 꿈은 감정적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앨런 홉슨마저도 이를 강조했다.) 스탠포드대학 정신과 명예 교수이자 정신치료자인 어빈 얄롬 Irvin Yalom 은 '꿈이란 삶 속 깊은 문제에 대해 말과는 다른 시각적 언어로 표현된 예리한 재진술이기에 귀중하다'고 자신의 책에 적었다.

깨어있을 때라면 미처 머릿속에 떠오르지 못했던 생각과 느낌들이 꿈꾸는 동안의 또 다른 나를 통해 표현되는 것, 그것이 꿈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존 레논은 #9 Dream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남겼다.

"이런 게 바로 장인정신이 담긴 작곡이란 거죠. 아시다시피 전 그저 쏟아낼 뿐이었어요. 적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그건 그냥 있는 그대로라고요. 전 그저 앉아서 썼을 뿐이에요. 아무런 현실적인 생각 없이... 제가 꿨던 꿈을 바탕으로요."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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