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소니픽처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중 '장고'라는 영화가 있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를 배경으로 흑인 총잡이가 아내를 구하러 가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이다. 여기 등장하는 백인 농장주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망한 흑인 노예의 두개골을 식탁에 놓고, 두개골 뒷면의 특정 부위를 가리키며 복종심을 나타내는 곳이라면서, "백인과 흑인은 두개골 모양이 다르다. 흑인이 복종하려는 마음이 백인보다 크다." 라고 말한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여기서 백인 농장주가 하는 말은 '골상학(Phrenology)'을 바탕에 두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상학은 무엇인가?

골상학은 두개골의 생김새로 사람의 성격이 어떠한지 판단하는 학문이다. 유럽의 의사인 18세기 프란츠 요제프 갈(Franz Joseph Gall)에 의해 제창되었다. 처음 학문의 이름은 '두상학' 이었으나 그의 제자인 슈푸르츠하임(Johann Gasper Spulzheim)이 '골상학'이라고 명명하여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골상학은 대뇌가 마음의 중추이며 대뇌 특정 부위가 각각 마음의 부분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현재까지도 널리 통용되는 뇌의 브로드만 영역(Brodmann area)과도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골상학자들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정신 기능의 개인 차이가 뇌를 담는 그릇인 머리뼈 모양에서 드러난다고까지 믿었다.

골상학은 당시 서양의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는 인종주의와 결합하며 19세기 내내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하였다. 아이들이 커서 누구와 결혼하고 무슨 직업을 가져야 성공할지 여부조차 골상학으로 판단했다. 당시 실험생리학을 개창한 마장디(francis magendie)는 골상학이 사이비 과학이라며 맹렬히 비판하였고, 때문에 주류 학계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주류 학계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미국의 일부 골상학자들은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골상학을 이용하였다. 그 중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새뮤얼 웰스(Samuel Wells)는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진 골상학 그림을 많이 그려 이를 널리 퍼트린 사람이다. 웰즈의 연구는 성 차별, 인종 차별로 바로 이어졌는데, 백인 남성의 우월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녀의 뇌, 인디언과 흑인/백인의 두상이 다르며, 그것이 곧 열등함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그림에 의하면 백인 남성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더 컸고, 흑인의 두개골이나 인디언의 두개골은 턱 부분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 골상학은 꽤나 인기를 끌어, 미네소타의 과학 박물관에 가면 골상 분석을 위한 골상측정기가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다가 20세기가 오고, 독일을 점령한 나치의 과학자들도 우생정책을 시행하며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골상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백인, 그 중에서도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골상학은 끝까지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골상학을 지지하는 논문에 논리적인 허점이 많았고, 정신과학과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성격이 단순히 인체구조에 따라 결정된다는 논리 또한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끝나면서 골상학의 대중적인 인기 또한 사라졌고, 우생학도 종말을 맞게 되었다.

골상학을 포함한 우생학은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학문이 악용될 경우,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가르쳐주는 하나의 예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뇌의 모양을 가지고서 어떤 행동이나 성격도 예견하려들지 않는다. 인류는 이 교훈을 얻기 위해서 너무 많은 희생을 했다.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겪고,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던 시대를 겪었다.

그렇다고 차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골상학은 일찌감치 끝이 났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차별이 남아있다. 최근까지도 남미에서는 단종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알코올의존을 가진 사람들이 대를 잇지 못하게 거세시켰고, 수많은 유전질환자들이 아직까지도 차가운 시선을 받아내고 있다.

학문은 인류를 이롭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얼마나 염두에 두고 있는가? 모두가 지금을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대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정 평등과 자유가 지켜지고 있는지는 재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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