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사진 (주)쇼박스

영화관에서 영화 '사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어둠 속에서 조금은 장난기 섞인 어린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공부안하면 저런 데 갇히는 거야?”

사도세자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으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인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겨죽였다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서 계속해서 다루어져왔기 때문이다. 숨 막힐 정도로 유교 논리에 압도되어 있었던 시대, 만민의 유교적 모범이 되어야했던 왕 영조는 어째서 스스로 '부자유친'을 깨고 그토록 잔인한 일을 행하게 되었을까.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시선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열등감에 사로잡인, 강박적 성격의 영조에 의해 가혹한 세자 시절을 보내게 된 사도세자가 히스테리적인 비행을 빈번히 저지르자, 영조가 종묘사직의 보존을 위해 결단을 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부인인 혜경궁홍씨를 '포함하는' 노론 세력에게 사도세자가 철저하게 패배하여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렀다고도 말한다. 몇몇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정도를 벗어난 성적 문란과 가학적인 비행을 양극성 장애의 기분 삽화동안 발생한 병적인 행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은 각자 처해있는 상황, 관심사, 가치관 등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영화 '사도'를 본 뒤, 한참 공부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초, 중,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농담 반, 진담 반 ‘공부안하면 큰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학부모라면 ‘너무 공부, 공부 하다가 애 잡겠다.’ 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어려운 집안을 살리느라 고군분투해온 가장이라면 '오죽하면 저런 행동을 했을까. 사도세자는 왜 뻔히 좋은 상황을 만들어줬는데 저렇게 밖에 못했나.'라고 하며 영조에게 더 마음이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자녀라면 ‘그래 저렇게 하는데 사람이 안 미치는 게 더 이상하지’라며 사도세자의 입장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또한 인간사를 권력의 이동으로 이해하고 정치적 관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노론 주도의 정국에서 개혁세력인 사도세자가 정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데 초점을 맞춰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정신분석적으로 고찰하거나 혹은 신경생물학적인, 질병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해봄직도 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사람은 보통 자기가 느끼고, 경험해온 대로, 즉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스키마’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스키마’란 사람이 각자의 지식, 경험 등에 따라 자신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기제다. 당연히 우리 모두는 살면서 모두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같은 현상을 봐도 모두 제각각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내 마음에서 기인한 주관적인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흔하게 타인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할 것으로 넘겨짚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인지한 현실 상황이 진실인 것으로 굳게 믿는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한다.' 라는 말이 있다. 각각의 장님이 각각 코끼리 다리, 꼬리, 몸통, 상아를 만지고선 서로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니, 가느다란 끈같이 생겼니, 담벼락 같으니, 빤질한 방망이 같이 생겼느니 하며 싸운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를 가지고 전체인 듯 이해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장님들이 자기 주장만 맞다고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통합시켜 종합적인 관점으로 코끼리를 이해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비교적 실체로서의 코끼리에 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 같다.

갈등을 가지고 반목하다 아들은 실패하고 아버지는 성공(?)한 이야기. 동서고금 역사와 픽션에서 무한히 변주되어 반복되는 이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이해와 관점을 통해서 재현될 것으로 생각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점과 이해를 더하다보면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인 '임오화변'의 실체적 진실에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제공  (주)쇼박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