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중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제가 작년부터 스트레스로 우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나 가족과의 갈등, 시험, 공부 등등 사실 그전부터 스트레스에 점점 약해지는 걸 느꼈는데 어느 시점부턴 머리끝까지 감정이 차올라서 미치겠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부모님이 크게 싸우시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어쨌든 다양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이 가라앉고 멍해지고 그 생각밖에 안 들면서 점점 망상을 합니다. 친구들과 싸운 일이라면 싸우는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부모님이 싸운 일이라면 이혼하시고 제가 엄마에게 갔다 아빠에게 갔다 하는 상황들 같은 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 상황이 정말 생생하고 상대방이 저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하기도 해서 상상을 하다가 웁니다. 울면서도 그 생각이 멈추질 않아서 그치다가도 울고 다시 우는 걸 반복합니다.

 

또 감정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면 그게 너무나도 싫고 기분 나빠서 해소하고 싶은데 어디 말할 데도 없어서 매번 혼잣말을 하며 감정조절을 못 하다가 결국 자해까지 합니다. 칼로 긋진 않고 머리를 때리고 박고 목도 조르고 합니다.

이런 게 작년부터 너무나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젠 조그만 거에도 기분이 가라앉고 감정이 벅차올라서 금방 울고 머리를 때립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꼬집고 그냥 미칠 거 같아서 저를 괴롭힙니다. 이게 너무너무 싫습니다.

부모님께 다 털어놓고 정신의학과 상담을 받고 싶은데 지금 특목고 준비로 학원비를 너무 많이 쓰고 있어서 상담 비용도 걱정이 되고, 엄마 아빠가 나보다 더 힘든 거 같아서 말을 못 한 건데 더 힘들어하시고 죄책감 느끼실 거 같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고 따지고 보면 원인이 다 저인 것 같아서 그냥 억울함을 눌러 놓고 그 위에 죄책감을 더 쌓습니다. 근데 또 그런 저까지 바보 같고 한심해서 스트레스가 됩니다.

 

최근에 아빠한테 작년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젠 작은 거에도 금방 힘들다까지만 말을 했습니다. 아빠가 저한테 미안해하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아빠를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뭐라도 해줄 것 같아 말하고 싶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아빠한테 그거 말한 거 빼고는 아무한테도 말을 못 했습니다.

너무너무 말하고 싶었어요. 나 자해한다고, 나 스트레스에 취약해졌고 그 감정이 너무 괴로워지면 당장 죽고 싶어 진다고, 근데 엄마 아빠가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고 내가 너무 철없어서 죄책감이 들어서 말을 못 했다고, 나 너무 힘들다고.

근데 한 가지만 말해도 듣는 사람은 벅차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금도 머리를 엄청나게 때렸어요. 얼굴도 때렸고요. 이제 정말 칼로도 할 거 같아 무섭고 언젠가 갑자기 죽어버릴 것 같아 무섭습니다. 저 너무 힘듭니다. 어떡하죠? 

 

평소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텐션이 높고 말도 많은데 기분이 가라앉으면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습니다. 이런 건 꼭 조울증 같네요. 의지도 사라지고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습니다. 외롭고 모든 것에게 서운하고 그렇습니다. 밤이 너무 무서워지고 별 게 아닌 것도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고 자제력을 더더욱 잃게 된 것 같은데 이런 것도 걱정이 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이제 중학교 3학년 학생인데 많은 고민거리와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성인만큼이나, 혹은 성인보다 더 큰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쓴이 분도 그러한 상황이겠지요. 특목고를 준비하는 중3 학생으로서 앞날에 대한 걱정과 초조감이 많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상황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더욱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니 그 어려움은 누구도 헤아리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글쓴이 분은 망상이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친구와 싸운 일이나 부모님의 갈등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은 반추에 가깝습니다. 반추는 실패나 어려움, 수치스러운 상황들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되돌려가며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추는 스트레스 상황을 더 선명하고 더 크게 기억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압도하게 만들어 마치 더 이상 빠져나올 구멍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현실에서의 한 번의 실수로 끝날만 한 것이 반추를 통해 나의 내면에서는 수십 번, 수백 번의 실패로 경험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우울감, 불안감,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고 심하면 우울증에까지 빠지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비난을 하는 사고 패턴이 보입니다. 정신과를 가고 싶지만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나보다 더 힘들까 봐 미안해한다든지, 아빠가 나한테 미안해하는 것에 또 미안해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글로만 보아서 잘 알 수는 없으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까지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 또한 글쓴이 분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이라면 어찌 되었든 나에게 속하는 것이기에 스스로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과도한 자기 비난은 자신을 무능력하고 능력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면세계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평온한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제로 힘들어야 할 것보다 더 크게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는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기에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지금 글쓴이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에 비해 스스로에 대한 공감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무턱대고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기까지 온 내가 안쓰럽고, 또 고맙다와 같은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글을 통해 판단 내리기에는 정신과 진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면담을 통해 현재의 고통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며, 자해를 대체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이나 과도한 자기 비난을 멈추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신의학신문 정희주 드림.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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