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3부 - 정신병원과 친해지는 방법

13화 이런 내가 정신병원을 가도 될까? - 1

 

나는 당신을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비슷한 감정을 앓고 있지만 쉽게 주변 정신병원을 검색하지 못했다. 정말 ‘미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쾌한 낙인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욱더 조심하게 된다. 병원 기록이 남으면 그걸 회사 측에서 알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유언비어이겠지만 지금은 뭐든 조심해야 할 시기이다. 굳이 불리한 일을 하기 싫다.

우울증이 아닐 수도 있다. 이건 내 성격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걸 착각하고 굳이 병원까지 찾아가는 건 너무 호들갑 떠는 걸 수도 있다.

막상 찾아가서 상담에서는 무슨 말을 하나? 묻는 것에 대답이나 조금 하겠지, 내 이야기를 길게 해 본 적은 없다. 지금이 편하다. 굳이 몰라도 될 사실까지 분석당해서 언짢을 필요는 없다. 


이 중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내가 그랬듯 말이다.

정답은 없다. 인생은 노력한다고 원하는 방향만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정작 직면하면 엉뚱한 곳에 날 데려다 놓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말이다. 우선 내 경우를 이야기해보겠다.

 

내 경우에는 애매했다. 너무 어릴 적부터 부정적인 환경에 놓이면서,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나의 삶이 되어버렸다. 이런 점들이 우울증 때문이라고 한다면, 마치 삶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절친한 K와 I의 미적지근한 반응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병원을 다닌 이후 이들이 날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슬쩍 들었다. 

내과, 이비인후과 정도로 편하게 갈 수 있는 병원의 종류가 아닌 만큼,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기도 걱정되기도 했다. 내과에서처럼 도장 찍어내듯 1-2분 진단받고 나오는 시스템이라면 상처 받을 것 같기도 했다. 걱정은 산처럼 쌓이는데 누구 하나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명확하게 이렇다 하게 시원한 답이 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야 했다. 나는 정말 위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로로 보이는 모든 바(bar) 형태의 것을 보면 목을 매기 적당한지 손으로 직접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고, 유서는 이미 몇 번이나 수정해 둔 상태였다. 제주를 향하던 배가 침몰한 어느 날, 난 낮에 뉴스로 침몰의 순간을 생생하게 바라봤고 몇 달을 마음 앓이 하며 울었다. 내가 참 괜찮다고 생각하던 연예인이 자살하던 날, 그가 어떻게 떠났는지 구체적으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나는 이미 주변의 파동에 쉽게 모래가루처럼 부수어지곤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예전에 남긴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유언인 듯 아닌 듯한 절망적인 글들이 가득 쓰였었다. 자기 연민으로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일기 페이지를 열었다. 

‘저녁에 K가 김밥 사들고 집에 와서 같이 먹고, 수다 떨고, K는 집으로, 나는 요가를 갔다.
갈 때는 비가 추적추적 오고 몸도 무겁고 귀찮기만 하더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요가에 집중했다.
현재에 집중한 것이 얼마만인가.
그것에 눈물이 날 뻔했다. 현재에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
서글픈 어제와 답답한 미래에 갇혀서 지금 현재의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나는 매트 위에서 허벅지와 다리와 팔을 비비 꼬고 버티고 땀 흘리고,
그리고 집중했다.
아주 좋은 감각이었다.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아주 집중적으로 나에게 충실하기로.’

...라고 쓰여있었다. 그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감각, 그것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나는 스스로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했다. 

 

지도 앱을 열었다. 지금 내 위치를 중심으로 정신병원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봤다.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정신병원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나와 코드가 맞는 병원을 찾아 헤맸다.

나에게 주어진 건 홈페이지뿐이었다. 모든 병원 홈페이지를 여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오래된 병원은 걸렀다.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 의사가 나를 그저 그런 우울증 환자 중 하나로 분류할까 봐서였다. 집에서 너무 멀지 않았으면 했다. 너무 집 앞이어도 곤란했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의 위치이기를 바랐다. 

내 조건에 맞는 ‘개원한 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은 두 개 정도로 추려졌다. 하나는 대학 이름이 병원 이름 앞에 쓰여있었고, 하나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전화부터 했다. 뭐라도 정보를 줄 것 같았고, ‘친절하지 않으면 가지 말자.’라는 도피의 핑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다만 병원이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예약을 하시라고 권했다. 5일쯤 후에 찾기로 시간까지 예약을 하고, 실감이 났다. 앞서 했던 걱정들이 우수수 다시 쏟아졌다.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정작 당일이 되니 무덤덤했다. 예약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애쓴 것 빼고는 내가 할 것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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