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2부 - 내 마음과 마주하기

11화 운동하며 마주하기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운동은 귀찮다. 

어릴 때는 태권도를 했다. 꽤나 잘했다. 나보다 덩치가 큰 사람과의 대련에도 기죽지 않고 이겨냈다. 스트레스가 풀렸다. 한 시간을 제자리 뛰기 하며 동작을 이어나가면, 체력 소모가 컸다. 숙면에도 꽤 도움이 됐다. 

그런 아이에게 초경이 왔다. 나는 초경과 운동이 무슨 상관관계를 맺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곧 알게 됐다. 태권도 도복은 새하얬고, 월경을 처음 겪는 나는 규칙적이지 않게 반복되는 여자들만의 사투를 남자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꽤나 길게 했던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체육시간이 매우 귀찮았다. 아무리 교실문을 닫고, 커튼을 쳐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는 것 자체가 참 싫었다. 땀이 나고 다시 교복을 입을 때는 셔츠에 땀이 묻어서 엉키는 그 감각이 불쾌했다. 학교는 융통성이 전혀 없었고, 수업 시간엔 정석대로 셔츠에 조끼를 입고, 치마를 입어야 했는데, 이마며 등줄기에 땀이 타고 내리면, 숨이 다 콱 막혔다. 

 

성인이 되고, 운동은 드디어 다시 취미가 돼주었다. 송골송골 땀이 맺혀도, 땀을 쉽게 날리는 전용 운동복을 입으면 훨씬 나았다. 근육을 만들고 싶어서 헬스를 시작했다. 헬스가 처음이라 PT(Personal Training)를 신청했다. 꽤나 비쌌는데 1회에 7만 원이 넘었던 것 같다. 다행히 성실한 트레이너를 만났고, 나도 적극적으로 운동해서 금액은 금세 잊혔다. 
 


근육 운동을 하면, 정확한 근육 위치에 자극이 가도록 기구를 움직여서 자세를 만드는데, 몰두하지 않으면 금방 팔, 다리 운동만 되고 끝이 나고 만다. 배에 근육을 만드는데, 자꾸 몸이 요령을 피웠다. 근육이 있는 허리 힘으로 배 근육 운동을 대체하는 것이다. 원하는 배 근육에 힘이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해야 했다. 운동은 생각보다 머리를 계속 쓰게 했다. 안 쓰던 위치에 힘을 주면 자꾸 쓰던 근육으로 쉽게 하려고 하는 몸을 달래느라 꽤나 진땀을 뺐다. 

근육운동이 모두 끝나고 나면 3-40분 정도 트레드밀(treadmill : 러닝머신)을 뛰고 갈 것을 권했는데, 이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됐다. 살짝 숨이 찰 정도의 빠르기로 걷고 있을 때, 다른 생각에 잠겼다가는 금세 기계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몸을 쓰면서 머리는 쉬었다. 운동의 마무리로 좋았다.

 

PT를 등록한 횟수가 끝나고 나는 요가를 선택했다. 역동적인 헬스를 했으니, 정적인 요가를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아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요가는 내 예상보다 훨씬 역동적이며, 몸 전체의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이었다. 정말이다. 요가 배경음악만 듣고 속아서는 안 된다. 알고 보니, 요가에도 여러 가지 운동 코스가 있는데 나는 그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아쉬탕가(Ashtanga Yoga)’를 했던 것이었다. 꽤나 흥미롭고 승부욕이 올라왔다. 내 몸을 나 스스로 제어하면서 맨몸으로 몸의 무게와 중심을 감당해야 했다. 자세를 유지하려면 꼭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함’

이 사실을 계속 인지해야지만 요가 자세는 완성이 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빵이나 사갈까?’ 따위의 다른 시공간을 생각하다간 금세 단단히 잡던 팔다리의 중심이 흔들리고 말았다. 나는 저 문장을 명상의 모토로 삼고 있다. 공황 증세가 일어나면, 마치 죽을 것 같은 감각, 즉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쌓이곤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함’이라는 문장을 대입시키면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게 훨씬 빨라졌다. 
 


요가는 ‘나’라는 주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운동이었다. 나의 손끝, 발끝의 방향, 몸통이 바라보는 방향, 팔다리가 어떤 식으로 서로를 지탱해 주는지 인식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깊게 안정됐다. 여러분에게 속지 말라고 했던 ‘배경음악’또한 안정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집에만 머물면서 요가는 자연스럽게 끝을 맺었다. 정신 병원을 다닐 때였다. 선생님은 운동을 꾸준히 해보라고 권하셨다. ‘아… 운동’ 까마득히 잊었던 운동에 대한 감각이 나는 귀찮기도, 두렵기도 했다. 워낙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나를 나오게 하려는 선생님의 작전 중 하나였다. 

왜 우울증에 걸리면 모두들 운동으로 극복하라고 할까? 나는 정신적으로 괴로운데 하나같이 쉽게 내뱉는다. ‘운동이나 해봐’ 지긋지긋했다. 우울증에 즉효인 약인 것처럼 운동, 운동하는 게 우울증을 낮잡아 보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나를 꾸준히 설득했다. 외출과, 활력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꾸준한 사람에게 이길 재간은 없었다. 내가 졌다. 

집 근처 필라테스를 선택했다.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서 이기도 했고, 연예인들이 약속이나 했듯이 인증샷을 올리는 통에 궁금증이 돋았다. 등록하는 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에게는 주의 사항이 있었다. 꾸준히 병원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려야만 했다. 집을 나온 이후 나에게 인복이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던가? 나는 참 배려심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부터, 1:1 수업을 선택하면서 밝고 넓은 공간에서 운동하고 싶다고 했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운동이 중심이 아닌, 우울증 치료 목적으로 운동을 다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상황을 모두 이해한 듯 밝게 웃으며 동의했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운동을 하러 왔을 때 내 표정과 나갈 때 내 표정의 변화를 보며 매우 뿌듯해하셨다. 

 

운동을 하라고 부추기고 싶다. 당신은 청개구리처럼 피해 가겠지? ‘내 몸과 마음을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어떤가? 몸과 마음은 적당히 비율에 맞게 써줘야 한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다면, 침대에 오래 누워있었다면 용기를 내보자. 몸을 움직여 보자. 동네 마음에 드는 길을 20분 정도 산책해도 좋다. 운동을 하며 만나는 당신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울적했던 당신도 운동이 끝나고 웃음을 날릴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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