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2부 - 내 마음과 마주하기

 

9화 사랑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모든 사랑은 숭고하고 동시에 위험하다. 

나는 가족을 나보다 사랑했다. 그랬기에 희생했고, 양보했다. 가족도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랬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방치되었고, 늘상 희생해야 했으며, 돌봄 받지 못했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도 위험하다. 나에게는 가족이 그랬고, 누군가에게는 연인이, 누군가에게는 종교나 신념에 대한 사랑이 그러할 것이다. 

나는 가족과 상호관계라고 생각해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방적인 짝사랑 같은 것이었다. 항상 내가 부족해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해서 질책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느 정도의 인내와 노력을 계속했지만 그것은 깨진 독 같은 존재라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물은 채워지지 않았다. 우울증은 더 악화되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사랑이란 치명적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함이란, 마음이 불안정하며, 고난을 이겨내기에 힘이 부족함을 뜻한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이란, 기댈 수 있는 존재이며 안정을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때론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힘이 들 때 만난 사람과 연애하는 이야기가 흔한 이유도 결핍된 마음에 의지가 되어서 일 것이다. 

내가 기댄다는 뜻은 상대방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뜻이다. 일방적이다. 이건 균형의 문제이다. 마음이 건강하고 힘이 좋은 사람의 경우, 이 관계는 지속 가능한 관계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하고, 언제 어디서나 상처 받기 쉽게 되어있다. 무던한 사람일지라도 자신도 모르게 상처 받고 안 좋았던 기억의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기도 한다.

나를 받쳐주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이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면 어떠한가. 우선 불안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 사랑이 변하면 어쩌지?’, ‘내게 지쳐버리면 어쩌지?’에서 ‘버려지면 어쩌지?’까지 생각이 다다른다. 

 

내 연애의 경우를 말하자면,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라면, 상대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서 일반적인 대화는 정말 잘 맞았다. 그러나 싸움이라도 나면, 서로 외계어를 쓰고 있는 듯했다. 상대는 나에게 “네가 말하는 건 전부 감성적인 호소뿐이잖아.”라고 질책했고,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콕 집어 말하는 상대가 원망스러워서 “그래! 나 그런 거 어제오늘 일이야? 그게 나쁜 거야?”라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처럼 연인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경우도 참 많았다. 종교에 의지했던 사람도 많았고, 정치나 어떤 신념에 자신을 바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나는 이것들 모두 사랑의 형태로 본다. 참 위험한 경우도 많았다. 

힘이 들 때 만난 친구, 연인, 종교나 신념은 마음속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차지하는 부분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해봤다. 그때 내가 의지했던 사람에게 지금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일상적인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사소한 것에서 불행을 잘 느끼고, 삶은 불행한 것들로 가득하다고 믿고 있다. 사소한 것부터 큰일까지 가치판단을 올바르게 내리기 힘들다. 건강한 마음으로도 많은 인내와 올바른 판단이 필요한 것이 사랑인데, 건강치 못한 상태에서 사랑의 모든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에게 사랑은 참으로 위태롭고 위험한 존재이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과 그루밍 성범죄(grooming) 등이 위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판단한 것을 틀린 것이라고 빈번히 비난하며, 점점 자존감이 떨어져서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종관계를 이루며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이 경우에 속하게 된다. 

그루밍 성범죄는 주로 미성년자를 포함하게 되는데, 어떤 판단을 정확히 내릴 수 없는 상대를 대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주로 성범죄) 가치관을 주입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나는 그루밍 성범죄가 미성년자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경우 자신의 판단을 미루거나 확정하지 않는 때가 많다. 또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때 그루밍 성범죄를 당하게 되면 속절없이 자신의 탓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위의 경우 이외에도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릴 때(연애, 종교, 정치 등을 시작할 때) 신중해야 한다. 휘둘리기 시작하면, 연애도, 종교도, 정치도 삶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기게 된다. 
 


사랑은 신뢰와 배려를 말한다. 사랑은 행복, 기쁨, 분노, 슬픔, 좌절을 겪게 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랑은 또한 책임, 인내, 이해, 노력을 요구한다. 감정적으로 많은 움직임을 요하는 것이다.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고 자신이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울, 불안 등을 느끼는 사람들은 위의 감정을 알맞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당신에게도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살아있음’을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한번 정중히 충고한다.

사랑은 숭고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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