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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 7. 정체되어 있다는 것[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2부 - 내 마음과 마주하기
심경선 | 승인 2020.04.01 01:43

 

7화 정체되어 있다는 것
 


나 빼고 모두 바쁜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경쟁 속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것 같다. 그래, 나는 패배자다. 이 모든 일의 결과는 나의 게으름, 무능함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경쟁의 최전방에서 이를 악물고 싸워봤다. 한때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엄청난 내상을 입고 최전방에서 나가떨어졌다. 이제는 경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조차 잊은 듯이 표류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할 지경이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일이라든가, 아침에 일어나서 불을 켜는 일 따위도 말이다. 내 삶은 어디까지 온 걸까? 

사회에서 뒤처진다는 감각은 무서운 일이다. 나 없는 세상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간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서운하다. 나만 이렇게 사나 싶어 SNS를 펼쳐본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누구네 집은 끝도 없이 크고, 누구는 명품을 휘감았다. 적당히 취미를 즐기며 농담 삼아 앓는 소리를 한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없는 것 같다. 한때는 친하게 지냈던 그들과 나와의 거리감은 이제는 지구 반대편만큼 멀어졌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먼 곳으로 흘러왔을까? 물론 부족함이야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지구 반대편일만큼 큰 부분이었나? 아니면 내가 게을렀나? 나는 나대로 발버둥 쳤다. 그게 부족했나? 모르겠다. 이제는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누구나 살다 보면 ‘정체감’을 느낀다. 그게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이 감정과 상황을 전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자신 스스로를 구질구질하게 느끼게 한다. 소중한 삶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하기야 정체되고 있다는 감각은 스스로가 삶을 소중하지 않게 느끼게까지 한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을 의미하고, 그곳에서 내가 내 포지션을 정하고, 목표까지 가닿도록 노력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정체감은 정 반대를 의미한다. 깃 없는 통통배에 내 삶을 맡기고 바다를 표류하는 것처럼 불안정하다. 불안함은 남과 비교하게 만들고, 삶에서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는다.

나는 아주 긴 시간을 표류했다. 어쩌면 지금도 정박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박한다는 것의 감각을 잊은 지 오래다. 아마도 안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음을 갖겠지? ‘사회에서 정체되어 있는 나’는 이변이 없는 한 삶을 바꾸려는 시도도 못한다. 정체되면 무기력해지는 것이 마치 순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적당히 정체되고 겉돌며 지냈다. 취미로 만난 사회 친구들이 있어서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혼자였다. 홀로 이겨내고, 뚫고 나가야 할 때는 무력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혼자 이겨내야 했을 때는, 직장 생활이었다. 나는 직장을 구하는 순간부터 모두 다 그만두는 순간까지 부당한 일들이 이어지는 것에 경악했다. 하지만 커다란 회사와 내가 싸워서 이기는 것은 겁부터 먹게 했다. 결국 눈을 질끈 감았고, 패배했다. 

이때의 나는 자존감이라고는 원래부터 없던 사람 같았다. 평소에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확실히 정체된다는 것은 자존감을 먹고산다. 나의 자존감은 정체된다고 느낀 순간부터 갉아 먹혀 순식간에 밤톨만큼 작아졌다. 이후 나는 작아진 자존감조차 감춰야 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순수하게 사랑하기도, 받기도 힘들다.

낮아진 자존감은 작은 성취감들로 다시 쌓아야 했다. 책이 읽기 힘든 나에게 ‘일주일에 몇 페이지까지 읽으면 성공’ 이런 방법들로 말이다. 산책을 30분 이상 한 날을 체크한다든가, 나 스스로에게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양분을 준 날을 크게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취미가 있다면 취미로 하는 일을 기록하는 일도 도움이 된다. 굳이 어려울 것 없이 ‘어떤 어떤 식물들 물 줌’, ‘어떤 나무에서 꽃이 핌’ 등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식물에 물 주는 것까지 기록하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나는 예스를 외친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흐르고 우리는 흐름 속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인받아야 안정감을 찾는다. 비워진 다이어리 한 장만큼 위태롭고 쓸쓸한 것도 없다.
 


우리는 드라마처럼 역동적인 성취를 바란다. 실망스럽게도 그 정도의 역동적 성취는 인생에 한 번 정도 있을까? 그것에 얽매여선 안된다. 삶은 옅은 바람처럼 불고, 어느 때에는 미적지근하다. 화려하지 않은 삶에 적응해야 한다. 스스로를 달래 보자, 타협해보자. 삶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순간들의 연속 같지만 찰나에 기쁨도 들어있고, 성취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역동적인 그래프를 그리며 삶이 와장창 흔들릴 때도, 나는 책을 두 페이지 이상은 읽고, 식물에 물을 주고, 10분이라도 산책을 하기를. 그렇게 나의 일상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내가 나와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어느 순간, 우리는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밤과 낮, 봄부터 겨울까지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심경선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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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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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ㅠㅠ 2020-04-08 12:50:17

    감사합니다.   삭제

    • 은희 2020-04-07 02:31:25

      1화부터 쭉 정말 공감하며 읽었어요.
      계속 경선님의 글을 읽고싶어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

      • 바라봄 2020-04-02 14:56:17

        왜 상처받은 사람들은 아파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은 본인들의 문제를 깨닫지 못한 채 남을 갉아먹으며 살아갈까요? 저도 비슷한 상황이였고 저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것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였네요. 묵묵히 써내려가신 글이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네요 :) 고마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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