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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 1부 5화 나를 견디게 한 것들 - 2[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1부. 아팠지만 나는 몰랐다
심경선 | 승인 2020.03.18 00:26

 

5화 나를 견디게 한 것들 - 2

 

집을 뛰쳐나왔다. 

사건은 어버이날 전날 밤이었다. 매일 퇴근과 함께 짜증과 잔소리를 시작하는 엄마의 시비를 무시한 지 일주일쯤 되는 날이었다. 엄마가 시비를 걸면 내가 ‘욱’하고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지쳐 있었다. 시비를 받아줄 사람이 없어진 엄마는 남동생에게로 향했다. 그리곤 짜증을 퍼부었다.

“청소 좀 하고 있지”부터 “꼴이 그게 뭐니 씻긴 한 거야?”로 이어졌다.

내 방에서 가만히 듣고 견디기 힘들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원래 다 그렇잖아?” 라고 작게 달래 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시끄러워, 말하지 마.”

 

레퍼토리였다.

엄마는 대화를 하다 막히는 순간이면 날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 닫고 네 방에 들어가”라거나 “말하지 마. 그러라고 너 가르쳐놓은 거 아니야”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단어들이 나를 찢어 발기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멍울을 어루만지며 꾹 참다가 어떤 날은, 왜 그러는 거냐며 다시 쫓아 나가곤 했다. 그런 날이면 엄마는 원색적인 욕설을 쓰기도 하고, 방문을 발로 차기도 했다. 내 방까지 들리라고 “가르쳐 놓으니 싸가지없이 대든다”라고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내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다.
 


그날은 이상했다. 죽을 것 같았다. 이런 반복에서 당장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내가 죽고 말 것 같았다. 말하지 말라는 경고에 나는 큰 소리를 냈다. 동생에게 바통이 넘어간 것에 참을 수 없는 화가 올라왔다. 

“대체 뭐가 문제야? 매일!”

“…. 뭐?”

내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어갔다. 엄마가 이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도 했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쏟아지는 나의 외침에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엄마의 몸으로 내 몸을 쳤다. 그리고 손을 올렸다. 

어릴 적 소녀는 죽었다. 이제 난 엄마가 사라지면 어쩌지 하며 매일 울던 아이가 아니다. 몸에 힘을 줬고, 휘두르는 손을 받아 잡았다. 이런 건 통하지 않아.라고 온몸으로 말했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당신이 공격하던 남동생을 불렀다. 얘 좀 어떻게 해보라는 게 요지였다. 동생은 둘 다 그만하라며 엄마를 타이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엉엉 우는소리가 들렸다. “잘못 살았다, 싸가지없다”에서 더욱 원색적인 욕설로 이어졌다.

 

정신병원에 다닌 지 두 달째 되는 시기였다. 나는 F코드를 두 개 받았고, 병은 단순히 두 개뿐은 아니었다. 내가 병에 걸린 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시기였다. 방을 박차고 나가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는 대체 내가 하루에 약을 몇 알을 먹어야 살 수 있는지 알아? 내가 왜 그렇게 많은 약을 먹게 된 지는 생각해 봤어? 나는 집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생각해. 알고는 있었어? 몇 번을 자살을 시도해봤는지 알아?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게 전부 나 때문이라는 거야?”라고 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실신을 했고, 동생이 나를 방으로 옮겨줬다. 발작처럼 온몸이 떨리고 죽을 것 같았다. 공황장애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새벽 4시까지 발작을 멈추지 못했다. 온몸이 달달 떨렸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숨쉬기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서서히 증세가 줄어들며 잠에 들었다. 얕은 잠을 자고 깼다. 우리의 집이 이제는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K와 I에게 연락했고, 단박에 달려와줬다. 급하게 쓸 짐을 챙기고 훗날 짐을 더 챙기려 열쇠를 챙겨서 집을 나왔다. K와 I는 나를 깔끔한 비즈니스호텔로 데려다줬다. 어버이날이었다. 
 


새벽 일찍 양재동에 카네이션을 사러 가려고 계획했던 날의 아침, 나는 집을 도망쳐 나왔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늘 상 그런 식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대든’ 다음 날이면 아빠는 나에게 크게 화를 내는 전화를 했다. 이번엔 상상 이상으로 화가 나 있었다. 

“네년은 내가 죽어도 장례식장에 오지 말아라. 인연은 이걸로 끝이다.”

와 갖은 원색적 욕설들. 끊어버렸다. 차단했다. 이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었다. 결단들이 필요했다. 비즈니스호텔에서 지내면서 폭풍 같았던 싸움의 후유증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 자살 충동도 심해졌다. 나도 나만의 집이 필요했다. 본가에 들어가 그동안 사모은 카메라들을 가지고 나왔다. 가장 값이 되는 카메라 세 대를 팔았다. 작은 보증금이 생겼다. 

나는 나만의 가족이 필요했다. 작은 원룸 방을 구했고, 바로 이어 유기된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다. ‘하루’는 그렇게 내 품에 들어왔다. K와 I는 집을 나와 함께 살기로 했다. 나의 작은 가족은 그렇게 넷이 되었다. 원 가족들 중 누구도 나를 찾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심경선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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