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저는 큰 소리 듣는 거나 조용하다가 갑자기 소리 나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항상 이어플러그나 이어폰을 끼고 다니고, 증상이 심해진 지는 1년 반 정도 됐어요. 

제 증상은, 갑자기 누가 크게 소리치거나 물건 같은 게 넘어지면서 큰 소리 나는 게 그냥 놀라다 못해 너무 듣는 게 무섭고 공포스러워요. 낯선 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큰 소리가 날까 봐 불안하고요, 정적이다가 갑자기 소리가 나면 진짜 작은 바스락 소리라도 너무 놀라고 불안해요.

그런데 단순히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는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심장 부근부터 시작해서 피가 갑자기 확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아요. 이상한 말 같지만, 큰 소리 들으면 공포감이 확 들어요. 누가 나를 공격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겁이 나기도 해요. 

제가 짐작하는 이유는 일단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언성 높여서 자주 싸우셨던 탓이 큰 것 같아요. 엄마가 저한테 화내거나 짜증 내고 싶은데 제가 이미 방에 들어가 버려서 지금 말하면 뒷북치는 거같이 된 상황이라면, 부엌에서 일부러 식기를 크게 소리 내서 정리하거나 닫힌 방문 너머로까지 들리게 한숨을 크게 쉬거나, 나한테 불만인 부분을 일부러 다 들리게 중얼거리세요. 그리고 그 내용이 거의 다 저한테는 엄청 상처인 말이에요. 이런 일이 워낙 자주 있었어요. 주위에 들리는 소리에 과민반응하는 것 같지만, 그게 버릇이 되어버렸어요. 

매번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자니 학교에서 친구들이 말 거는 것도 잘 안 들리고 불편해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질문해봅니다. 사소한 소리에 너무 과민반응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삶에서 꽤 불편할 수 있는 고민으로 보입니다. 그간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상의 소음들에 괴로웠을 질문자님께 위로를 보냅니다. 

 

사실 큰 소리가 날 때 불안해지거나,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일은 흔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는 외부 자극이나 내적 스트레스가 가해질 경우 일시적으로 이에 대한 반응으로 감각이 예민해지고, 감정적으로 흔들리거나, 신체적 반응-이를테면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는 등-이 나타납니다. 이 반응들은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생리 반응의 범주에 속해요.

우리 모두에게는 안팎의 스트레스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일종의 보호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가 그냥 소음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그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잠시 예민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반응들은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 바닥에 가라앉듯,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항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homeostasis)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외부 자극이 반복될 때 일어납니다. 회복기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스트레스와 자극이 반복된다면, 우리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흥분되고, 예민한 상태가 유지됩니다. 질문자님을 비롯, 사소한 자극에 많이 흔들리는 탓에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분들은 성장 과정에서 과도한 외부 자극과 스트레스가 반복되어온 영향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에 숨죽여 그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면 주변에 들리는 소리가 소음이 아닌 큰 의미를 가진 그 무엇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주변 많은 것들에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지요. 비유컨대 물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작은 흔들림에도 흘러넘치고 있는 상태인 셈입니다. 반복적인 스트레스는 인간을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그리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는 상태로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불안의 수위 자체가 많이 높아지게 됩니다.  

 

불안한 마음은 인간이 그 상황을 피하게 부추깁니다. 질문자님처럼 귀마개나 이어폰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회피하게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방법을 유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편함을 유발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상황을 피하는 일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그 비슷한 상황들도 함께 불편함을 느끼게 되기 마련입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직면입니다. 물론 무작정, 무식하게 불안한 상황에 직면하여 견디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신이 습관적으로 피해왔던 소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왜 소리가 나는 상황을 피하려 하는지, 그렇게 극단적인 ‘조용함’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놓쳐야 했던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그리 위협이 되지 않는 정도의 상황에 점차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고, 이를 견뎌내는 연습을 해나가야 합니다. 물론 두려움이 생기겠지만, 소음에 대한 습관적 인식(‘나를 비난하는 소리’ ‘나에게 위험한 소리’)에서 벗어나고, 소음을 소음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꼭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소음이 있는 거리, 그다음에는 좀 더 시끄러운 카페, 이런 식으로 강도를 늘려가며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을 해나가는 겁니다.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조금씩 감내하면서 우리는 불안과 불편함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변하게 됩니다. ‘절대 하기 싫은 것’ 혹은 ‘위험한 것’에서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불편한 소음과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바뀌는 것입니다. 

금세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천천히 밟아간다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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