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여의도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인 유전자, 그리고 어릴 때의 가정환경, 교육 환경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물론 “타고난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일을 노력으로 극복했다” “어렸을 때의 환경이 너무 안 좋았지만 극복하였고, 지금은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의 사례들을 종종 듣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화들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타고난 유전자, 그리고 성장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나면 부모와 함께 하는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에는 굉장히 큰 책임이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내 유전자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될까 두려워 아이를 가지는 것을 망설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그랬기 때문에 나도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아이에게 전달되는 것이 무섭다.”

사실 유전될 때 안 좋은 것이 그대로 유전된다는 보장도 없고, 현재 나의 안 좋은 유전자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배우자의 유전자도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아이에게 내 안 좋은 점만 유전될까 봐 불안해하시는 것은 조금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인이나 배우자가 실제로 유전이 높은 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조심할 필요는 있겠지만요. 막연하게 불안해하기보다는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을 하신 경우에도, 출산을 앞두고 자녀들과 어떠한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나는 우리 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는데, 지금 내가 엄마가 될 생각을 하니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엄마와의 관계를 자식에게도 되풀이할까 두렵다.’와 같은 불안감을 가지신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셔야 할 점은, 나와 엄마는 다르고, 나와 내 자식도 다르기 때문에 나와 엄마와의 관계가 나와 자식 간의 관계에까지 되풀이된다는 것에 대해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의 나보다 나아졌으며, 과거의 나는 부모와의 관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내 자식에게는 그러한 경험을 안겨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부모와 함께한 경험들을 교훈 삼아 더 나은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분명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 그리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는 정말 어떠한 부모가 되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자녀는 어떠했으면 좋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첫 단계는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가 감정이 욱 하여, 혹은 지금 힘들어 어떠한 행동, 언행을 하고 싶더라도 만약 앞에서 생각했던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구체적이라면 보다 감정을 다스리는데 용이할 것입니다.

아마 출산을 앞두고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바뀌어야 할 미래를 감지하고 있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게 되면 지금과 같이 감정 표현을 편하게 하지도 못 할 것이고 일상생활 매사가 조심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점에서 불안은 앞으로 바뀌게 될 미래에 대한 준비, 그리고 태도 변화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불안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그려보고, 준비를 하고, 대처 방식도 강구하는 등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 출산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몇몇 분들의 불안만이 아니라, 임산부라면 누구나 겪을 불안일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앞으로를 위해 체력관리, 정서안정, 육아 계획 등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다가올 미래, 곧 있을 현실에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현재 사회적인 환경 역시 출산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유전자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가 왜 걱정되는지, 아이가 태어나서 겪게 될 환경이 왜 걱정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좋은 환경, 좋은 가정,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더 살기 편하고 우대받는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98명으로, 중국의 행정자치국인 마카오를 제외하고 전 세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기 힘들고, 아이가 살기 힘들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현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출산에 대해서 아예 고민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고려하지 않는 것 또한 무책임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다음 세대에게 어떠한 환경을 물려줄지, 어떠한 사회를 물려줄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것이 나와 우리 사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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