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임찬영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대 초반 여대생 A는 수줍음이 무척 많은 편이다. A에게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불편한 일이다. 대학교 과제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는, 며칠 간을 고민했지만 얼굴이 달아올라서 몇 마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A는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2명의 친구와만 어울리고 가족 없이 외출하는 일은 거의 없다.

A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아주 작은 부정적인 반응 하나하나가 크게만 느껴지게 된다. 작은 거절의 메시지는 A를 크게 열등한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A는 항상 ‘자기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주변 사람이 실수를 비웃지는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A 스스로도 자신이 과도하게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안다. 이런 성격을 고치려고 스스로 노력해 봤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회피성 성격장애(Avoidant personality disorder)의 증례입니다.

상대방의 평가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고 거절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주된 심리입니다. 이 때문에 대인관계를 회피하게 되고 친한 사람들과만 지내려고 합니다. 사회적인 활동을 원활히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발표 상황, 긴장되는 상황 등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심해서 일상적인 활동, 대인관계 등에 문제가 될 경우에는 회피성 성격장애를 고려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_픽셀


1) 역학 & 원인

회피성 성격장애의 유병율을 2.4%가량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좀 더 흔하게 발생합니다.

유아기에서 이별, 분리에 대한 불안은 당연한 일이지만 성장과정에서 호전됩니다. 대인관계에서의 불안이 청소년 후반기, 성인기 초반기에까지 지속된다면 진단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기질적으로, 정상적인 뇌에서 전두엽은 과도한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회피성 성격장애에서는 전두엽의 억제기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서 일반적인 활동까지 억제하는 것이 주된 병리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반사회적 성격장애에서는 전두엽의 억제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충동적인 행동, 범죄 등을 발생시킵니다.

심리적으로는, 안정적인 애착을 가진 아동은 대인관계의 거절을 받아도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하지만 불안정 애착 아동이 대인관계에서의 불편감, 모욕 등의 좋지 못한 경험이 되풀이되면 과도한 수줍음, 불안감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기질적으로 취약한 아이에게 부정적인 경험이 되풀이될 경우에 회피성 성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2) 진단 및 감별진단

사회적인 관계의 제한, 대인관계에서의 불편감,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지나친 예민함 등이 전반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또한 다음 중 네 가지 이상에 해당해야 하는데,

- 비판,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인관계 또는 직업적인 활동을 회피함.
- 자신을 좋아한다는 확신 없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함.
- 수치스러움, 놀림받는 상황에 대하여 극도로 두려움을 가짐.
-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거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 부적절한 불편감으로 새로운 대인관계를 맺는 것이 힘듦.
- 자신을 매력이 없고, 열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낮은 자존감.
- 새로운 일에 시작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활동을 극도로 피함.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상적인 수줍음(shyness)과의 감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목받는 상황이나 발표하는 상황 등에 대하여는 당연히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정상적인 불안과 회피성 성격장애는 꼭 감별이 필요합니다. 불안감을 어느 정도 경험하지만 그럭저럭 극복하고 대인관계,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면 이는 성격장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일상 활동, 대인관계, 직업 활동에 상당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회피성 성격장애를 고려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회피성 성격장애 환자는 대인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 불안감 등으로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울리고는 싶은데 부끄러움이 많은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의 경우는 스스로 대인관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는 감별이 필요합니다. 

회피성 성격장애는 다른 장애와 공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의존적인 성격과 연관이 많은데 대부분의 관계는 회피하지만 일단 믿고 의지하게 된 대상에 대하여는 집착하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은 대개 특정 상황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만 한정되어 발생한다면 이는 성격장애가 아니라 사회공포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치료 & 예후

스스로 병식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다른 성격장애에 비하여 치료가 용이합니다. 전반적인 성격장에 대한 치료에는 상담을 비롯한 정신역동치료가 효과적이고, 우울감, 불안감, 불면 등의 조절을 위하여 약물치료가 매우 효율적인 치료입니다. 

전반적인 경과는 연령이 증가하면서 회피성 경향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계 형성이 오랜 시간 동안 되지 않고 방치된다면 혼자 있는 환경에 적응하여 은둔형 외톨이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이는 좋지 못한 예후를 보입니다. 초기부터 치료가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장기적인 상담을 비롯한 역동적 정신치료가 도움이 됩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에 접촉을 해도 되고, 자존감 강화를 위하여 최근에 경험한 단기적인 사건에 집중을 할 수도 있습니다. 행동 치료적으로, 자기주장 훈련 또는 사회기술훈련이 도움이 됩니다. 어떤 문제를 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때로는 집단상담치료를 통하여 상황을 연습해 보고 거절에 대한 민감성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매우 효율적인 치료입니다. 회피성성격장애는 우울감, 불안감, 사회공포, 불면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하여 항우울제(세로토닌 제제)가 도움이 되며 특히 지나친 자율신경항진의 안정에 기여합니다. 항불안제는 환자가 느끼는 증상을 즉각적으로 호전시킬 수 있으며, 사회적응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회피성성격장애는 일반적인 수줍음과 다릅니다. 삶 전반에 드러나는 거절에 대한 민감성, 대인관계의 심한 회피경향을 보입니다.

방치되면 만성적인 외톨이가 될 수 있어서 초기부터 치료가 필요합니다. 약물치료, 행동치료, 역동정신치료 등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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