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과거에는 활발하고 명량하다 소리를 자주 듣는, 어떨 때는 그게 너무 심해 말이 너무 많다, 산만하다 등의 소리가 들을 정도로 외향적인 아이였습니다. 친구관계도 좋았으며 공부도 잘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나 동경할만한 이상적인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문제가 터졌습니다. 저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왜 그런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굳이 추측해보자면 왜소한 체격과 막 사춘기로 들어감으로 인해 저에게도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생겨 저답지 못하게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반 아이 몇 명이 저를 따돌리는 분위기를 조성하던 중, 제가 반 아이 하나와 싸웠습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던 반 아이들은 제가 잘못했다 결론지었으며, 저는 그 이후로 반에서 완벽한 혼자가 되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저를 대놓고 싫어했으며, 누구도 저와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듯했으나 그것도 반복되자 점점 손을 놓아버리셨죠.

반 아이들은 뭔가 트집 잡을만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공개망신을 자주 주었으며 저에게 온갖 정신적 모욕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을 다른 반 아이들도 일부 알게 되었고, 또 그중 저를 괴롭히던 아이와 친한 애들을 중심으로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이때 제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이때부터 능동적이었던 저는 수동적이 되었고, 인간관계도 무척이나 좁아졌으며,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공부마저 중위권을 맴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제 거의 모든 장점들이 안 좋은 쪽으로 바뀌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사귀었던 친구가 옆에 있어주었던 것과, 다른 반 아이들 친구 몇 명을 사귀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저는 절망 속에 살면서도 죽는 게 무서워 사는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이때 멍청하게 학폭위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죠. 학폭위에 신고하면 내가 완전히 매장당할까 봐,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엔 너무 죄송해서 숨겼습니다.

 

중학교 때 이후로 저는 망가졌습니다. 저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몇 안 되는 의지할만한, 혹은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몇 명에게는 다르나, 평소 학교 애들 중 누군가 말을 걸어주면 잘 대답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휴대폰을 보며 낄낄거립니다. 막상 말을 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으며, 이건 친한 친구에게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먼저 다가오는 반 애도 없었으며, 고등학교에서도 지금 반 아이들 중에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애 하나 없습니다. 

과거에 저에게 인간관계란 가장 쉬운 것이었으나, 지금은 제일 어려운 것이 됐습니다.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학교에서는 어두침침한 애인 주제에 집에서는 일부러 밝은 아들을 연기합니다. 물론 부모님도 제 성격이 좀 많이 변한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곪아 있는지는 모를 겁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정상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저는 가식적입니다. 이것도 친한 친구에게는 좀 나으나 웃기지 않더라도 웃고, 그냥 최대한 부정적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웬만한 모욕은 이제 저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흘려 넘길 수 있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전 자기비하적입니다. 뭔가 잘못되면 잘못한 이가 분명하지 않은 이상 모두 제 탓 같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못나서 그래" "난 왜 사는 걸까"라며 저 자신을 괴롭힙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못 믿을 테스트이긴 하나 그거라도 해봄으로써 제 상태를 알고 싶어서 여러 번 해봤습니다. 거기서 얻은 결과는 트라우마 테스트에서 트라우마라고 인정하는 점수를 훨씬 상회하는 점수를, (이런 병이 진짜 있는진 모르겠으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테스트를 여러 번 해서 모두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는 결과를, 우울증 테스트를 여러 번 해서 반 정도가 우울증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금은 방학이라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지만 새 학기, 새 학년이 되면 다시 저러겠죠.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과거의 자신은 찬란해 보이고 현재의 자신은 초라해 보입니다. 제가 제일 행복했던 시기인 초등학교 때로 기억을 잃은 채 회귀해 그 시간 속에 갇히고 싶다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어떡해야 밝고, 행복했던 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정말 믿을만한 친구에게도 말 못 하는 주제에 꼭 누군가에겐 말하고 싶어 이렇게 글 남깁니다.

 

+ 이건 위에 고민과는 조금 다른 고민이나 이것도 남깁니다. 이런 조언받아볼 기회는 알기에...

아까 위에서 제가 공부를 못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열심히 해야 마땅합니다. 저는 그걸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현실은 잔혹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노력을 안 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행동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이런 더를 많이 답답해합니다. 목표도 최근 다시 정했습니다. 확실하게는 아니나 그래도 새로운 목표를 정했습니다. 저 자신이 더 열심히 할 수 있게요.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노력하지 않으며 나태합니다. 저도 이런 제 자신이 답답합니다. 심할 때는 자괴감도 듭니다. 그러면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흔히 공부할 때 쓰는 방법이 '계획하기'는 정말 싫어합니다. 너무나 귀찮게 느껴집니다.

현재 저는 일반고에서 재학 중이며, 성적을 더 올리지 못하면 곤란하다는 것쯤은 저도 알기에 더욱 힘이 듭니다. 뭔가 제 태도를 고칠 방법은 없을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면서 성격과 행동, 사고방식에 변화를 겪고 지금의 만족스럽지 못한 삶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학대, 따돌림 등도 물리적 폭력에 준하는 혹은 그보다 더한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글쓴이 분의 경험 역시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시기를 버텨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왕따 경험은 트라우마에 해당하며 트라우마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끼쳐 남아있는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글쓴이분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세상은 두렵고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선생님의 방관은 주변의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듭니다. 왕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나는 무능력하고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 실제로 자신을 도움받지 못할 곳으로 이끌어가고, 무능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감정과 연결되어있고 종국에는 우리의 행동과 싦의 모습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쉽지 않은 일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는 것이 결국에는 지금의 삶을 바꾸어나가는 길이 됩니다.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다만 왜곡된 생각으로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을 과장하지 않는 것, 즉 필요한 만큼 우울해하고 정확하게 불행해야 한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지금 글쓴이분은 현실의 문제와 어려움을 과대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짓누르게 하여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지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왕따를 당했던 기억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 역시 필요합니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주어지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예컨대 왕따를 당한 자신을 무능력한 피해자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와중에도 그 어두운 터널을 견뎌온 생존자로 받아들인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나의 이미지상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적어주신 나태함은 무력감에 가까우며 나는 무능력하다는 해석에서 기인하는 결과입니다. 과거와 지금의 나에게 다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나태함(으로 착각되는 무력감) 역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가 없는 것처럼 느끼실 수 있으나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을 찾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혼자서 지금의 삶의 패턴을 벗어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주변의 정신과를 찾아가 적절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정신의학신문 정희주 드림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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