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작년 7월 ‘직장인 괴롭힘 방지법’이 발의되면서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개선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법안 발의 이후에도 직장 내 괴롭힘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비교적 직장 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괴롭힘의 방식은 점차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괴롭힘의 행태가 교묘할수록 대처하는 입장에서는 힘들고 자칫 자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 장기간의 싸움이 되더라도 대응방식을 전략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괴롭힘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황을 확인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로 어떤 것 때문에 ‘괴롭힘’이라고 느끼는지, 어떤 부당한 요구가 있었는지, 경우에 따라 녹음을 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괴로움을 객관적인 괴로움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본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이 일상 업무를 넘어선 ‘가혹행위’가 아닌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객관적인 기준을 확보했다고 해서 바로 해당 상사에게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회사 내에 있는 공식적인 소통창구를 찾아 중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를 권합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공식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보자에 대한 비밀보장도 이뤄집니다. 우선 자신이 회사 내의 문제로 힘든 상황을 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조언이나 대처법을 제시해 줄 수도 있고 상황에 대한 별도의 파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회사에 상사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심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일종의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진_픽셀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이제부터는 이 상황을 강하게 대처할 것인지 참고 넘어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하게 대처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이직까지 고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자인 본인이 가해자로 억울하게 몰리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정을 하기 앞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직업적 ‘가치’를 재평가해 봐야 합니다. 직업에서 전문성 혹은 경력을 얻기 위해 고단하더라도 일정 기간을 반드시 버텨내야만 하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이 직업적 성취와 관련 있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면 포기하지 말기를 권합니다. 물론 내 정신력이 붕괴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면 반드시 주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아무리 ‘전문성’이 좋다지만 내 정신적 자원이 피폐해진다면 경력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괴롭히는 직장 상사가 있다면 그가 ‘소시오패스인가?’와 같은 판단에 집중하기보다는 ‘내가 지금 정서적으로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라는 질문으로 나를 확인해 나가는 것이 바른 방향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통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점검하고 상의한 내용을 진료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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