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전에 유명인들의 고부관계를 예능으로 풀어낸 한 프로그램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논란이 된 방송에서 시아버지는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의 지능이 낮아질 것”이라고 며느리에게 자연분만을 요구했지만 며느리는 “제 건강보다 아이의 지능을 먼저 염려하시느냐”라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물론 예능이기 때문에 설정된 장면이 다소 삽입됐을 수 있겠지만 이 날 방영된 장면은 곳곳에서 회자되며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에 당사자 부부가 하차하는 일에 시댁 식구들이 책임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장면이 이토록 거센 반향을 일으킨 것은 임산부에게 요구되는 모성을 이유로 며느리의 안전은 뒷전으로 미뤄지는 현실을 꼬집은 데서 비롯됐다.

어머니가 되는 여성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세계 어느 관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은 출산이라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여기에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억압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모성은 출산과 같이 잉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성은 신성시되고 있고, 여성이 임신으로 짊어지는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했다.
 


임신은 여성에게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뇌, 기분, 신체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예전처럼 기분이 좋지 않다거나 몸이 무겁고, 기억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또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이 생기면서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에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으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들로 불안이 지속되면 공황장애처럼 발작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자다가 가위에 눌리거나 큰 불안이 생길 것 같아 숨을 쉬지 못해 응급실까지 가는 경우가 생긴다. 임산부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일상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아이를 임신을 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꾸준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임산부 본인이 직접 겪는 고통은 소외되기 십상이다.

임산부도 정신과에 내원하기도 한다. 우울감이 심한 경우 임신을 중단하고 싶어 하거나 아이를 해치려는 생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극단적인 우울증상이지만 임산부에게는 약물을 권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최근 미국에서는 산후 우울증에 대한 약물이 FDA의 승인을 받았지만, 임신 중에 사용하는 약물은 극히 제한돼 있다. 꼭 임산부에게 약물을 처방해야 할 경우에는 태아가 크고 나서 투여할 수는 있다.

모성은 생물학적인 본능이나 가볍게 감수할 수 있는 노력이 아니다. 임신으로 생기는 변화는 곧 사람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산모도 예외가 아니듯 출산을 기대하는 주변의 시선이 아이에게 쏠릴 동안 정작 산모의 말하기 힘든 감정은 소외될 수 있다. 임신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토로하기 어려운 생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산모와 태아를 위해 병원에 내원해서 상담해 볼 것을 권한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