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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중의 건망증, 문제 있는 걸까?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3.06 00:19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4년 한강에서 이색적인 대회가 열립니다. 바로 ‘멍 때리기’ 대회입니다. ‘망각은 신이 준 선물이다’라는 말처럼 뇌를 쉬게 하는 일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이 대회는 현대인들에게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시간낭비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잊어버리는 행위를 온몸으로 보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가장 평온한 모습을 한 참여자 중에 가장 안정적인 심박 그래프를 보이는 사람이 우승자가 됩니다. 이제는 한국은 물론 타이페이와 홍콩에서도 국제대회가 열린다고 하니 비단 한국에서 벌어진 작은 움직임 이상이었나 봅니다.

망각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500개 단어를 한번 듣고 기억해 기억력 부문에서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에란 카츠(Eran Katz)는 “망각은 기억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고 뇌의 재구성이 한 번씩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전합니다. 두뇌는 마치 무궁무진해서 망각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카츠는 “필요 없는 정보가 지워진 두뇌 영역에는 새로운 기억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상에서 지내면서 지금 막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좀 이따가 다시 기억해내고 일을 진행하거나 정 생각이 안 난다면 다른 일에 집중합니다.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억력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되물어보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나이가 많아서 건강을 꼭 챙겨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것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구별됩니다.

기억력이 퇴행된다는 것은 단서를 주어도 무엇인지 생각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당시에 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주의 집중해서 기억해두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입니다. 사소한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면 2~30대 회사원분들이 예전에 비해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억력이 좋았는데 같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에서 혼자 생각이 안 난다거나 대략적인 업무는 기억하지만 상세 내용에서 실수가 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젊으신 분들이 기억력이 안 좋다는 것은 정말로 뇌 기능의 퇴행이라기보다 스트레스와 연관이 큽니다.
 

사진_픽셀


기억력은 기억하는 과정과 다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데 더 중요한 업무에 신경을 쏟다 보니까 나머지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해서 기억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주의력이 떨어지면 당시 주변 상황이나 정보를 저장하고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보다 집중력을 높이려고 애를 씁니다. 가치 있는 것을 기억하려고 하려는 것보다 얼마나 생산적인 것에 집중력을 활용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어플을 통해 30분 단위로 일정을 관리하거나, 기억해내지도 못할 내용까지 촘촘하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기억력이 좋다면 절친한 친구 전화번호를 외운다거나 네비 없이도 20년 전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 있는데 이제는 이런 모습들은 현재의 일상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의 기억력은 경험과 감정이 각인하는 중요도에 따라 견고해지기 마련임에도 망각을 한다면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 왜곡되고 의미가 퇴색된 정보는 저절로 잊힙니다.

더 나아가 나쁜 기억을 지워내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이롭습니다. 카톨릭 의대 채정호 교수팀은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뇌를 MRI로 촬영해보자 부정적인 경험에 사로잡히지 않은 비결은 ‘외상 후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즉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나의 가치, 주변의 고마움으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이 기억의 재구성에는 뇌를 비워내고 일정 기억을 망각하는 과정이 동반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멍 때리기’라는 것이 일종의 희화화처럼 표현됐지만, 이는 인간의 영성을 깊게 해 주고 삶의 의식 차원을 한 단계 높여주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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