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일본의 대표적인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는 어릴 적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다. 나가노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탓에 그녀의 부모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어린 야요이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체벌로 다스렸다. 어린 야요이는 부모에게 맞을 때마다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고 이후에도 시선에 계속해서 물방울 잔상이 남아 그녀의 사고를 지배했다. 섬망이 일으킨 물방울 환영은 그녀가 평생토록 미술작업을 이끌어온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간혹 상담을 하다 보면 뭔가 다가오는 느낌을 받거나 물체가 커 보이게 느껴진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혹은 건물이 무너지거나 갑자기 뭔가 나에게로 달려올 것 같다는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것들은 불길한 예감에 가깝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야요이가 겪은 섬망과는 다르다.

그런데 정말로 물체가 커 보이는 것이라면 이것은 심리적인 요인이라기보다 기질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뇌에 인식하는 경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신경과, 안과에서 검진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
 

사진_픽사베이


물건이 크게 느껴지거나 주변 소리가 확장돼서 들리는 식의 감각이 반드시 조현병, 공황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높아졌을 때도 나타난다. 걱정을 많이 할수록 나쁜 가능성에 대해서 확대해석을 하기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진이 뉴스에 나온다고 하면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지진이 날 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내가 항상 불안하면 이런 것도 실제 가능성을 따져보게 되고 일상의 에너지를 불안에 모두 소진하게 된다.

불안이 생활에서 늘 반복적으로 겪는 것이라면 고통의 강도는 클 것이다. 불안을 계속해서 겪는다면 지칠 수밖에 없게 되겠고, 불안한 기미만 보여도 놀라게 된다.

뇌에 문제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본인에게 사물이 커 보이고, 확대되어 보이는 증상이 정말 그렇게 보이는지 또는 느끼는 것인지 다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기준에 비춰봐서 무엇이 맞는지를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치료의 방향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반복해서 현실에서 느끼는 감각이 왜곡되어 느낀다면, 파국적인 결과와 결부하여 생각하는 것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불안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을 갖춰나가는 데에서 시작한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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