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용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믿었던 친구가 알고 보니 저를 몇 년 동안 이용한 것을 깨닫고 그 충격이 너무 컸어요. 모두가 멀리하는 그 친구랑 가깝게 지냈는데 친구는 저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조종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저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당하고 있었고, 주변에서 다른 친구들이 제가 그 친구랑 친해지면서 이상하게 변했다는 말도 그냥 흘려들었어요. 그러면서 엄청난 자책을 했어요. 그 친구가 너무 좋아서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같이 놀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쁘게 변하고 있었나 봐요. 다행히도 제가 나름 줏대를 지켜서 많이 나쁘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사람을 볼 줄 모르고 멍청하게 당했다는 점과 그 친구가 저를 지금까지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믿었던 연인에게 엄청난 배신을 당하고 사람 간에 하면 안 되는 말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울면서 그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럴수록 그 사람은 저를 더 만만하게 봤어요. 이 사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앞뒤가 다르더군요. 그 사람이 했던 말에 너무 상처를 받아 그 사람이 저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저를 찌르네요. 하지만 저는 그놈의 정이 뭔지 자꾸 그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그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 자꾸 생각나서 너무 힘드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 얘기예요. 저는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시지만 솔직히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어요. 부모님은 저에게 첫째라는 것만 너무 강조하시면서 어렸을 때부터 양보하는 법, 나보다 동생을 더 챙기는 법을 배우면서 저 자신보다 타인에게 맞추고 양보하고 돌보는 법부터 배웠어요. 그러다가 제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반대만 하더군요. 가족이란 항상 응원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범죄나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게 아닌데 다들 저는 못 한다면서 반대하고 부정적인 얘기만 하고 응원은 하나도 안 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가족들에게 엄청난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꼈고 그런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지금도 집에서 저만 외톨이예요.

작년 한 해 제가 제일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니까 참 힘들더라고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계속 울고 하고 있던 공부도 의욕이 사라지더라고요. 솔직히 투신하려고 문 열고 의자 위에까지 올라갔다가 뛰어내리는 게 무서워서 울다가 지쳐서 시도는 못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살 고위험군이었지만 부모님의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한 번도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흘러가는 대로 자라왔는데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지금 상황이 힘드니까 가끔씩 그냥 이렇게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시한부 받아서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든 참고 버티다 보면 해 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ㅠㅠ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용진입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항상 상대적이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여도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알 수 없기에 복잡하게 생각하면 끝이 없는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관계에서 상처 받은 경험이 있거나, 말씀하셨듯이 배려나 양보, 타인에게 맞추는 것이 올바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배웠다면 어느샌가 그 방식이 내 안에 패턴처럼 굳어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이나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나처럼 상대방도 배려하고 양보하고 나에게 맞추어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항상 상대는 나와 같지 않기에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고 나에게는 상처로 다가오는 일이 반복될 확률이 높습니다. 또 그 상처들이 누적되어 인간관계가 더 어려워지고 위축되어 더 눈치 보고 그것이 힘드니까 고립되고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져버릴 수 있겠죠.

 

관계에 있어서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상대방에나 환경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이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고, 설령 관계가 힘들어진다고 하여도 그건 상대방이나 내 탓이 아니고 단지 서로의 방식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글에서 글쓴이님은 이용하고 조종하려 하였던 것이 사실이라면 상대방의 명확한 잘못이겠고 실제로 그렇게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겠지요. 다만,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하여도 이것을 자신의 문제나 내가 맞추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관계를 붙잡고 있었던 시간이 길었다면 그와 같은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의욕의 저하가 지속적이라고 하면 꼭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여 평가와 도움을 받기를 바라고, 더불어 진료 과정에서 대인관계의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상담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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