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한 1년 전에 살던 건물이 가스 폭발로 화재가 났었는데요. 처음 겪는 사고라서 굉장히 무서웠어서 그 뒤로 태풍이라든지 지진, 차사고 이런 것들에 압도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그러는 동안만 무섭다는 감정만 들었는데 저번 말일쯤 자다가 갑자기 깼는데 탄 냄새가 나는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방문 열고 황급히 나가서 확인해봤는데 아무 일이 없더라고요. 현관문 열어도 아무 일 없고 혹시 몰라서 공기청정기 쳐다보고 있어도 별 변화가 없길래 착각이구나 했는데 문제는 그날 그런 이후로 너무 불안해요. 진짜 그때처럼 불이 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계속 무의식 적으로 드는 거 같습니다. 불안감 때문인지 불면증도 생겨서 이상하게 두근거리는 거 같아서 잠을 못 자겠어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박지웅 전문의입니다. 화재를 겪으셨던 경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면 우리가 원치 않아도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에는 마치 지금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경험하는 플래시백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화재 사고를 겪고 타는 냄새를 맡은 것도 어쩌면 심각한 트라우마 직후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금 나의 정신과 신체가 아직도 그 사고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사고 현장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아닌지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게 하고 도망칠 준비를 하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심장이 뛰고 동공이 커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땀이 나고 손도 떨릴 수 있죠. 그러다 보니 휴식을 취하거나 수면을 취하는 데에 심각한 방해가 되고, 나중에는 긍정적인 감정 경험조차 못하게 되어 일상생활과 직장생활마저 유지하지 못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참 안타깝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바라지도 예측하지도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리고 트라우마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회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 좋은 기억마저 소화시켜 더 건강한 상태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하죠. 다만 그 소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탈이 났을 때 내과 의사를 만나고 소화제를 처방받아 소화를 시키는 것처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잘못 먹은 것은 토해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내가 겪은 끔찍한 트라우마를 토해내듯 없애버릴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기억을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감정적 소화제를 복용하면서 그것을 결국에는 소화처리를 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외면하고 회피하여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용기를 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다시 현재의 삶을 집중하고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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