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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극심한 좌절감, 우울증일까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2.23 00:06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우울증이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운 마음에 사연을 보냅니다.

저는 우울증에서 몇 년 전 겨우 벗어났어요. 그러고 나서 지난 몇 해간 일에만 매달렸고 한 해의 반 이상을 밤샘을 하곤 했었어요. 지쳤다고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일 시작 전에 평생 겪어오던 불안과 우울이 일을 통해 치유된 부분도 커서, 모두가 그렇듯이 삶에 명암이 존재할 뿐 그럭저럭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의 규모가 커지고서부터는 전처럼 재미보다는 부담감이 늘어나고, 일손이 모자란데 사람과 어울리는 게 두려워 혼자 힘으로 해나가려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는 새 몸과 맘이 많이 닳은 것 같습니다. 혼자 일하는데도 일에 끝이 없어 보이고, 고민은 너무나도 많고, 공감받고 이해받을 사람은 없고... 계속해서 잘해야 돼, 포기하면 안 돼, 자신에게 되뇌다가 어느 순간 퓨즈가 터져 불이 나가듯이 주저앉은 것 같아요.

 

한 달 전 갑작스레 일을 그만두고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못하겠다, 더는 못하겠다 생각하고 누워서 잠만 잤어요. 정신과도 다니고 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잘 지내고 있다고 보시는 것 같아요. 식이장애, 공황장애를 극심하게 앓던 예전의 저보다는 기능적으로 확실히 잘 사는 것처럼 보이리라 생각해요. 돈도 벌고, 매일매일 일도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새벽마다 오열에 가깝게 울면서 일을 했고,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 싶을 땐 술을 먹으면서 일을 했어요. 가족이나 정신과 선생님께 일이 힘들다, 버겁다 말씀을 드리면 다들 일이 잘 되어서 힘든 거니 좋은 스트레스라고 할 뿐...

제 안의 우울감이나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은 그런 파국으로 치닫는 듯한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받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혼자서 상황도 감정도 어떻게든 감당하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더 해나갈 수가 없어서 일을 내려놓고 매일 잠만 자고, 우울하면 좀 울다가 다시 수면제를 먹고 자고... 이걸 반복하고 있어요.

 

몇 주 쉬면 다시 정상적인 제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성적으로는 나가서 운동도 하고, 바람도 쐬고, 일을 재개하고, 사람도 구하고 차근차근해나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떤 일이나 노력이나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킬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느낌이에요. 안이 텅 빈 느낌이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홀로 남은 것 같아요. 기억력이나 집중력도 많이 떨어져서 뭐 하나 집중해서 잡고 있을 수가 없고 좋아하고 재밌었던 일이건만 이제는 머릿속으로 떠올리기조차 너무 버거워요.

몇 주 더 쉬고 싶은데 쉬어봐야 지금처럼 시간만 갈 것 같고, 그렇다고 일을 재개하기엔 똑같이 지쳐서 주저앉을 것 같아요. 도망칠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이 어딘가 갇혀버린 기분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간 제가 했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좌절이 너무 큽니다.

지금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사연 곳곳에서 질문자님의 지금 상황을 마주하는 절박한 마음이 느껴져 참 안타깝습니다. 질문자님께 힘내라는 어쭙잖은 위로를 먼저 건네봅니다. 

아마 질문자님께서 힘들어하시는 이유는 우울 증상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우울의 늪에서 벗어난 후, 시간이 흘러 다시 우울증에 빠지게 될 때 극심한 좌절을 맛보곤 해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기쁨을 채 맛보기도 전, 다시 예전의 길고 깊은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겠지요. 우울증을 극복한 후에 경험한, 건강했던 삶의 기간까지 모두 다시금 어둠 속에 매몰되어버리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현재 나타나는 우울감을 비롯한 기분 증상들이 대인 관계, 일상생활, 사회적 활동에 지장을 미칠 때 우리는 ‘우울증’이라 표현합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 질문자님의 모습만을 보면, 우울증이 재발한 상태로 보입니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잘해나가던 일 또한 거의 중단된 상태이니까요.

하지만 결코 좌절로만 끝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시점에서는 많은 것들이 가장 최악의 상황임을 가리키고 있더라도, 이전에도 그랬듯 기분은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올 테니까요. 우리의 삶이 그렇듯, 기분 또한 좀 더 멀리서 보면 출렁이는 파도와 같은 법입니다. 바닥으로 치닫는 시기가 있다면, 다시금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움직임 또한 인생의 어느 순간에 질문자님께 분명 주어질 겁니다. 다만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분명 필요합니다. 

 

과거 우울증을 치료했던 자세한 과정은 글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전 질문자님께서 우울, 공황, 식이 문제를 극복했던 그 과정과 마음가짐을 다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에 어떤 치료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와 같은 부분부터 어떤 생활 방식, 사고방식이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치료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와 같은 부분들 말이에요.

물론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분명 다르고, 증상의 정도도 다를 겁니다. 하지만 병이 생겨나고 나아지는 큰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면, 현재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어요. 오랜 기간 힘들었던 시기를 거쳐, 한동안 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예전 자신이 노력했던 방식이 분명 도움이 되었다는 말일 테고요. 이는 질문자님이 가진 굉장히 큰 무기이고, 자산일 겁니다.

현 상황이 분명 힘드시겠지만, 분명 최근까지만 해도 질문자님께서는 원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즐겁게 했었다면 더욱 과거의 긍정적 경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당시에 힘이 되었던 행동, 생각, 그리고 마음가짐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 한동안 잘 달리던 차가 잠시 이상이 생긴다 해서 다시 원래의 출발지로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가는 길 중간에 잠시 멈추어 그 자리에서 정비를 받으면 될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게 될 겁니다.

많은 분들이 우울증이 다시 자신의 삶에 나타났을 때, 자신이 그간 노력했던 것, 경험했던 것 모두 사라지는 듯한 좌절을 겪습니다. 하지만, 분명 내가 경험했던 긍정적인 것들은 내 몸과 마음이 기억되어 있을 거예요. 부디 질문자님께서 이 부분을 생각하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열어서 주변의 도움을 받고, 특히 치료받는 선생님께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좀 더 털어놓으신다면 현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한 가지 더, 질문자님의 과거 치료 경과를 알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현재 사용하는 약(라모트리진)을 다른 항우울제로 변경하거나, 항우울제를 함께 병용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주치의 선생님과 논의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감정이 너무 가라앉아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범위 또한 굉장히 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감정은 인지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약물 조절을 통한 기분의 향상 또한 필요할 거라 생각이 됩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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