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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떠난 연인이 그리운 당신에게새벽 2시, 당신이 전화를 걸기 전 읽었으면 하는 이별 이야기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12.13 01:18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새벽 2시, 이별한 이들에게는 가장 고된 시간이다. 세상이 잠든 시간에 잠들지 못했다는 건 흔하지 않은 고뇌가 숙면을 허락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낮의 분주함으로 덮었던, 해결되지 않는 마음속 아픔이 되살아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호한 슬픔에 허덕일 때면 그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의 곁에 있을 때면 세상 어떤 슬픔도 비켜 가는 느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하릴없이 부유하는 듯했던 삶이, 그와 함께하며 비로소 온전해짐을 느꼈었다. 기뻤고, 평온했다. 그랬었다.

그가 곁에 있는 순간은 이제 기억 속에만 있다. 이토록 불완전한 삶에,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일이 바빠 만남이 몇 차례 미뤄졌을 때? 사소한 그의 한 마디가 마음에 너무도 날카롭게 꽂혔을 때? 몇 번의 다툼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는 그의 습관에 지쳤을 때? 그때는 그토록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기억들이, 이별의 아픔 앞에서는 한없이 사소하게만 느껴진다. 이토록 그리울 줄 알았더라면 그런 것들쯤은 얼마든지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었을 텐데.

불현듯 그가 나를 그토록 사랑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별을 말하던 때의 그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의, 한없이 다정하던 그의 기억. ‘그래, 조금 오해가 쌓였지만, 지금의 내 마음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풀릴지도 몰라.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이런 모든 생각들에 앞서, 그저 그와 함께하던 시간들이 너무 그립다. 목소리가 듣고 싶다. 여보세요, 라는 그 짧은 말만 들을 수 있어도 지금보단 조금 덜 힘들 것 같다.

고민하다 지쳐 잠들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지친 마음이 그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움직인다. 결국, 마치 머리가 잠시 눈감아 주는 틈을 타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잊을 수 없는 번호를 누르고 눈을 꼭 감은 채 통화음을 기다린다. 심장이 멎는 듯 통화음이 멈추고, 이윽고 들려오는 여보세요. 그러나 그 차가움은 내가 기대하던 톤과 음색과는 너무도 다르다. 나는 할 말을 잃는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충분히 고민할 새도 없이, 내가 알던 그가 아닌듯한 어색함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전화는 종료된다.
 

사진_픽셀


얼핏 생각하기에, 이별한 상대에게 연락하는 일은 단순히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한 번 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로만 보인다. 하지만, 한층 더 깊은 마음을 바라보면 실은 아직 이별이 진정으로 끝났음을 인정하기 힘든 마음이 있다. 

그토록 사랑하던 우리 중 하나가 이제는 더 이상 서로가 연인이 아님을 선언했다고 해서 이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헤어짐을 말하는 그 순간은 앞으로 이어질 지난한 이별 과정의 시작일 뿐이다.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진심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그가 없는 삶이 그가 있는 삶보다 자연스러움을 아프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별은 종결된다.

어차피 냉정한 그의 마음을 한 번 더 확인하며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실은 내가 원했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의식적인 수준 아래의 깊숙한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갈망이다. 이는 ‘이미 이루어진 이별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아니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이별을 지연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국에는 받아주지도 않을 전화를 자꾸만 건다.

이별을 논하는 대화는 연인 사이를 마무리하는 이야기들이라기보다, 연인으로서 마지막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다. 오직 단 하나밖에 없던 특별한 사이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보다도 더 어색한 사이로 돌아가는 일. 아직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는, 이미 이별을 먼저 마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끊임없이 연인으로서의 마지막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아픈 이야기를 하자면, ‘그도 후회하고 있을지 몰라,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라는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힘든 마음은 약해질 때가 많고, 약해진 마음은 상대를 생각할 때 나의 바람을 상대에게 투영하기 쉽다(투사).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큰 나머지, 그 역시 나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리고 그와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홀로 몰두하는 생각은 점점 스스로의 희망을 따라 구체화되고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그렇기에, 바람은 종종 현실과 다르다.

이미 내 마음속에 기억하는, 그토록 서로 사랑했던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발적으로 투정 부리듯 내뱉거나 상대를 시험하기 위해 고도의 계산을 거친 ‘헤어져’가 아니라면, 이별의 말은 오래, 아주 오래도록 그의 마음속에서 익어왔을 것이다. 내가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는 그 호숫가에서도 그는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별을 통보받는 이는, 지금까지 알던 그와 오늘의 냉정한 그의 모습 사이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단지 무뎌진 나의 시선이 조금씩 변해가는 그의 모습을 찬찬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며, 내 안의 그의 모습을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 세심히 맞추지 못했을 뿐이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니, 당신이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중이라면 당부하고 싶다.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아직 이별이 끝나지 않았음을 되새기고, 홀로 하는 이별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좋겠다. 떠난 그에게 닿으려는 시도는, 지금 그에게는 반가움보다는 부담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마음은 단순해서 함께일 때 행복한 이에게 끌리고, 불편한 이를 멀리한다. 그의 이별 통보가 관계의 중단을 간절히 원해서인지,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에게 당신이 없는 시간이 필요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만약 도저히 그를 보낼 수 없다면, 오히려 치열하게 그를 잊으려 노력해야 한다. 사랑하기에 잊으라니, 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를 원하는 이토록 강렬한 마음까지도 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홀로 견뎌낼 수 있을지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어쩌면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또한,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면, 오히려 나의 마음이 진심인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을 수 있다. 지금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인연이란 실은 드물다. 만약 서로가 서로여야만 한다면, 그것이 나만의 마음이 아니라면, 지금보다는 시간이 흘러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더 깊어진 후에 다시 서로의 때가 찾아올 것이다. 

 

마지막 당부로 만약 당신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전화를 들었다면, 그래서 결국 그의 차가운 목소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말았다면,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실컷 울되 절망하진 않았으면 좋겠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그도, 나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나눌 단 한 사람이 서로라고 믿으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을 뿐, 그뿐이다.

‘그때 더 잘했더라면’의 문제도, 다시는 그만한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란 문제도 아니다. 다만, 당신이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내일을 맞기를 바란다. 

‘그와 나는 그토록 사랑하였으되, 우리가 함께할 인연은 여기까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우리는 다시 닿을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의 행복을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그가 있었던 때와 다르지 않게, 그가 없는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나간 이별의 아픔들을 떠올려 본다. 모든 추억의 종결이라는 압도적인 막막함 앞에 울었고, 내일이 그려지지 않는 짙은 고독을 버텼던 나날들. 그때의 마음을 떠올려 보면 어떠한 방법론도, 당면한 헤어짐의 아픔 속에 빠진 당신을 충분히 위로하진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들이 흐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특별할 것 없는 나날들이 돌아왔었다. 그러다 어느새 또다시, 다른 누군가와 특별함을 꿈꾸고, 그 누군가가 다시없을 한 사람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며, 그 특별함은 다시금 일상이 된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추억하며 그때의 내게 전해주고픈 글이다.

그때는 그토록 무겁고 깊은 아픔이라 생각했던 기억을, 하잘 것 없는 글로 담담히 그려 보는 지금의 나, 그리고 이 글 자체가, 결별로 인해 내일을 상상하기 힘든 당신이 조금은 더 살아봐도 될 작은 근거가 되기를 바라본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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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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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마 2020-06-20 21:40:26

    이글을 읽고 나서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아파 하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글이....매력적이네요   삭제

    • 오써니 2019-12-18 22:27:25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   삭제

      • 착똑 2019-12-16 12:06:50

        첫사랑과 헤어진지 23년.. 이제 진정 이별을 마쳤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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