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사소한 것이라도 신경 쓰이고 거슬리면 계속해서 확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제도 퇴근하고 너무 피곤한데도, 빨래가 대충 개어진 것을 보고 모두 풀어서 다시 개고 잤습니다. 옷을 다 개고도 각이 잘 잡혔는지, 주름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계속해서 반복하고 확인하는데도 불안한 겁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몇은 옷장에서 다시 꺼내 새로 개었습니다. 너무 이 과정이 힘들고 지치는데도 삐뚤어져 있는 모습이 계속 생각나 끝끝내 또다시 다 풀어헤치고 개는 일을 반복해요. 

이것만이 아니라 업무에도, 사람관계에도 사사로운 일들이 저를 매번 괴롭힙니다. 지하철에 앞 사람이 어깨에 가방끈이 뒤집혀 있었는데 고쳐주고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기도 하고, 바닥에 뭐 하나 떨어져 있어도 걸레질로 닦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도 저절로 손이 먼저 가는 행동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광민입니다.

사연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강박증상으로 보이네요. 예를 들면, 원하는 위치에 물건이 있고, 옷에는 적당한 각이 있어야 하고, 주름이 없어야 하는 등 이런 상태를 설정하고 꼭 지켜져야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못 받아들이는 겁니다.

강박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내가 상정해 놓은 기준값이 있어요. 이 상태로 되돌려놓으려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동에 패턴을 보이게 됩니다.

강박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생각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내가 ‘이것은 여기에 있어야 해.’라고 정해놓은 생각 때문에 불안한 감정을 느끼지요. 거기서 더 심해지면 행동으로 넘어가는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나타나면 강박증이라고 판단합니다.

 

요즘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강박증은 뇌의 생물학적인 원인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이라는 질병 수준 이전의 강박증상은 꼭 생물학적인 결함이 있어야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강박증상의 원인에는 불안한 마음이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문제를 풀 때는 검토하는 버릇이 없는데, 시험 칠 때에는 평소보다 많이 검토를 하게 되서 정해진 시간에 문제를 다 못 푸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사연 보내 주신 분의 경우, 이러한 강박 증상이 질환 정도 수준인지 아닌지는 당장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와중에도 옷을 개는 행위를 해야만 하는 것을 보면,

1. 강박증 수준일 수도 있을 것 같고,

2. 추측하건데 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빠뜨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한 마음을 보상하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강박증이 있으면 본인이 가장 힘듭니다. 아까 언급한 대로 강박에는 불안이 깔려 있습니다. 내가 못 받아들이는 어떤 지점이 불안이나 걱정으로 확장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놓으려는 행동, 교정하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안절부절못하게 되니 자신이 제일 괴롭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불안감을 행동을 통해서 없애려고 합니다. 이러면 불안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로 행동하고 나면 불안감이 줄긴 합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일상생활에 문제로 이어지는 데서 시작합니다. 가족들이 가장 먼저 힘들어집니다. 계속해서 강박에 매달리고 반복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힘들어하세요.

또 더 나아가면 이런 생각과 행동을 나뿐이 아니라 주변에 강요하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대인관계가 힘들어지기도 하죠. 예를 들면 강박증 상사가 있다면 요청과 지시가 다른 상사들에 비해 훨씬 많아질 겁니다. 거기서부터 같이 괴로워지는 것이죠.

본인이 가장 괴로워하는 경우는 오염에 관한 겁니다. 이런 경우 피부, 손이든 어딘가에 세균이 있다고 생각하고 씻어내기 위한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세요. 하루에 수십 번씩 손을 씻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고 샤워에 두 시간 넘게 쓰기도 합니다. 내가 일상생활에 누리는 시간도 강박행동으로 허비되지만, 심한 경우 너무 손을 씻어서 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곁에 있는 주변 사람이 보는 것만 해도 힘듭니다.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데에 혼자 하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내 손에 오염물질이 묻었다고 생각하면 씻는 강박행동으로 넘어가죠. 그런데 그것을 막상 안 해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스스로 경험해야 합니다. ‘아, 괜찮구나, 이런 행동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라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노출요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손에 더러운 것이 묻는 것이 싫어하는 경우 예를 들어 땅바닥에 손을 대고 있게 하는 것까지 합니다. 일련의 불안이 나에게 괜찮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겁니다. 이런 경험에 노출시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강박증이든 단순한 강박증상이든 우선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을 권하고 싶고요. 강박증이라면 반드시 약물치료가 동반되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인드랩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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