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0대의 직장인입니다. 제 고민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어디가 어떻게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요즘 인간관계에 대한 ‘현타’와 현재 삶에 대한 공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래된 고향 친구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저를 만나서 알고 지내다 보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저를 ‘알 듯 말 듯하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TMI를 잘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더라고요.

요즘은 사람에 대한 기대감도 없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지 않아요. 어렸을 때는 친해진 친구의 부탁에 거절을 못 하는 성격 때문에 다른 친구가 그걸 이용해서 저에게 이것저것 부탁했어요. 그러면서 나름의 깊은 얘기도 나누게 되었지만 했지만, 오히려 그게 약점이 되어 배신당하고 왕따를 당하곤 했어요. 또 왕따를 피해 멀리 떨어진 학교로 신청하여 배정받고 잘 지내다가 왕따 당했었다는 사실이 또 약점이 되어 왕따를 당하곤 했고요. 왕따 당한 사실을 부모님한테 말했더니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구한답시고 말한 사실이 저에겐 상처가 되었어요. 그리곤 거절 못 하는 저의 성격도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죠.

도저히 안 되어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무리한 부탁은 거절도 할 수 있고 햄버거 가게에서 주문도 못 하던 내성적인 아이였던 제가 현재는 모르는 사람한테도 먼저 말 걸 수 있을 정도로 사회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별개로 갑작스러운 친한 친구와의 서먹해짐, 손절을 겪고 나니까 더욱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졌고, 저도 친구와 여럿 모여서 놀고 싶은데 1:1로 친하게 되고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 깊은 사이가 된 사람은 몇 없어요. 이런 좁은 인간관계도 싫습니다. 사실은 나만 친하다 생각한 거구나 싶었던 친구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사실 그 또한 아닌 거 같고요.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티를 내려 하지만, 뭔가 속상해요. 하지만 막상 관계를 잘해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표현하기도 그러하고요.

부모님의 이혼과 저에게 준 상처들이 자존감을 낮추었고 그걸 티 내고 싶지 않다 보니 자존심이 세진 거 같아요. 지금은 연을 끊고 살지만, 나중에 제가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되거나 했을 때 저의 집안 배경을 오픈하는 게 꺼려지니까 어렸을 때부터 비혼을 생각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인생 혼자 사는 거다, 하는 생각도 강하고요.

다른 상담 글을 보니까 운동을 해라, 취미를 만들어라, 등등 조언을 하시던데 주변 친구들은 저보고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고 할 정도로 퇴근하고 꾸준하게 요가, 영어 공부를 하면서 나름의 취미생활도 즐겨요. 하지만 인간관계의 공허함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요가를 통해서 예민했던 제 성격이 나름 차분해졌고, 가끔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성격도 바뀌었는데 저의 어떤 점이 문제라서 전날까지만 해도 연락하고 대화하며 잘 지냈던 친구와도 말없이 멀어지게 된 걸까요? 하루가 고된 날, 퇴근하고 만날 친구 하나 불러내기 어려운데 보통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걸까요? 저는 대체 어디가 문제일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신재현입니다.

힘든 기억과 경험들을 나누어주셨네요. 중요한 시기 겪었던 상처와 아픔이 글 곳곳에 묻어나는 것만 같아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현재 질문자님의 삶을 보면 규칙적 운동, 성취감, 그리고 이로 인한 삶의 즐거움이 있어 보여요. 너무나 큰 다행이지요. ‘건강한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많이 해나가고 계셔요. 힘들고 어두웠던 시기를 지나, 삶이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글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가서 대견하기도 하고, 참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인간관계는 그리 편치는 않아 보이네요. 아마 어린 시절에 겪었던 부모님의 이혼, 지속적인 따돌림의 경험 때문일 테고, 믿었던 이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더해진 탓이겠지요. 성장 과정의 경험은 우리가 살아가며 나, 타인, 관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형성합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아마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진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구나’ ‘그러니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열 필요가 없구나’ 혹은 ‘이 세상에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은 없겠구나’ 하는 시각이 생겨났을 겁니다. 즉, 눈 앞에 세상을 걸러주는 필터가 하나 생긴 것과 같아요. 그렇게 되면 경험하는 많은 관계들이 그 필터를 거쳐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형태로 마음에 들어오게 돼요. 부정적인 상황은 더 부정적으로, 긍정적인 상황은 그 의미가 왜곡되어 받아들이게 됩니다. 질문자님께서 했던 많은 노력들이 극단적인 관계의 회피나 위축에서 벗어나게는 해주었지만, 그러한 필터를 없애주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그러한 필터는 의식적인 영역에서 작동하기보다는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작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나도 모르게 상황을 여과하여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 연습을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관계 자체가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지를 바라보셔야 해요. 이 두 가지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어요. 또,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대한 체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해보셔야 합니다. 그 체념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관계에서조차 회피하게 만들었을 테지요. 어린 시절,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학창 시절의 감정이 아직 ‘나쁜 버릇’으로 남아 질문자님의 관계를 방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달라요. 질문자님은 어린 시절의 힘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외톨이의 모습이 더는 아니잖아요. 건강한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실제로 많이 건강해졌어요. 관계를 회피하거나, 타인 앞에서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습관처럼 하고 있던 ‘나쁜 버릇’이 왜 생겨났는지, 지금의 나에게 어떠한 패턴으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패턴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쳐 왔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신이 진실이라 믿어왔던 그 낡고 오래된 필터에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전에 관계에 대해 늘 해왔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 행동을 반복하기보다 잠깐 멈추어 좀 더 건강한 행동을 선택하고, 연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낡은 필터는 좀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필터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나’를 좀 더 표현해도 돼요. 아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불안한 일이겠지만, 결국 건강하고 온건한 방법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이 건강한 관계를 만들도록 도와줍니다. 건강하고 깊은 관계는 감정이 오고 가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관계일 텐데, 이제는 그걸 연습해야 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하겠지만 마음을 여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건강하고 적절한 수준의 자기표현이 가능해질 겁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비관적이고 부끄러운 마음이 지금껏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친밀해지는 걸 막아왔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겪어왔던 삶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자신의 짐으로 짊어지고 살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피하기보다 더 필요한 건 ‘받아들임’입니다. 과거에 힘들었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내가 참 그간 힘들었구나’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잘 견뎌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으로 삼는 거예요.

더는 과거에서 온 기억의 찌꺼기가 관계를 가로막지 않도록 삶의 방향을 잘 설정하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또 지금까지 노력해왔듯, 조금만 더 힘을 내셔서 삶의 다채로움을 경험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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