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성격에 대해 고민하던 중 회피성 성격장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저도 회피성 성격장애에 속하는지 의문이 들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내향적이고, 낯을 좀 가리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고, 반대로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주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해나갑니다.

과거에는 이런 현상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않을까 고민했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 자체가 떨어진 듯한 느낌도 듭니다. 어쩌면 ‘나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어.’라는 합리화이자 회피일 수도 있겠고요.

친구가 아예 없거나 사교적인 자리를 일부러 피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수의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썩 편하지는 않은 기분입니다. 평소에 친구들과 만날 때도 9할 이상은 일대일로 만나는 경우가 많고, 다수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편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공존합니다.

한 자리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상황이라도 모든 구성원과 사적으로 친한 관계면 그 자리는 매우 편안한데, 구성원 중 일부와 초면이거나 어색한 사이일 경우에는 그 수에 비례하여 불편감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 대화하고 알아가다 보면 해결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제 성향이 그저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회피성 성격장애'에 가까운 수준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렇게 짧은 글을 보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무당이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제 성격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한지. 만약 단언하기 힘들다면 어떤 부분을 더 고려해 봐야 하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염태성입니다.

성격장애라는 진단은 정신과 의사에게도 참 어려운 영역입니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진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진단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치료적 접근을 해야 할지도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성인)은 타고난 것이든,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형성된 것이든 자기만의 성격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성격구조로 인해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과도하게 힘들게 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때에는 성격 '장애'라는 진단을 붙이고 치료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과의 대부분 문제들이 그렇듯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명확히는 정해져 있지 않고, 진단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도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다른 정신질환과의 감별도 중요한데, 회피성 성격장애와 감별이 필요한 질환들로는 우울증, 범불안장애, 사회공포증, 그리고 의존성이나 조현성 같은 다른 종류의 성격장애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글에 언급된 내용만으로 성격장애에 준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지 평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이러한 나의 성향으로 인해 스스로가 사회기능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내가 문제를 느끼고 있는지, 혹은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지는 않는지(일반적으로 회피성 성격장애는 주변을 힘들게 하는 쪽은 아닙니다만)가 감별에 중요한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관계 자체를 피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아서 이런 종류의 어려움이 질문자분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든지, 또는 어떠한 진단명을 생각하시든지 간에 스스로의 성격에 대한 불편함을 못 느끼신다면 괜찮지만, 불편함이 크다고 느끼면 자존감 향상과 연관된 노력을 비롯한 여러 시도들을 해 보시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정신과 방문을 권해드립니다. 다만 정말로 성격장애의 영역에 해당되는 문제라면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더 지속적이고 오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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