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부산서면 통통샤인정신과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오빠가 5년 가까이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어요. 처음엔 ‘힘든 일이 있나 보다. 가만히 두면 괜찮아지겠지.’했는데,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참다참다 아버지가 '허구한 날 방구석에서 처박혀 있을 거면 집을 나가라'며 크게 화를 내신 뒤, 오빠는 가족들과 아예 대화를 차단하고 살아요. 방안으로는 절대 못 들어오게 하고요. 집에 오는 손님들의 발길도 끊긴 지 오래입니다. 아버지가 ‘내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데.’ 속상해하시는 모습에 안쓰럽다 못해 이제는 화가 치밉니다. 어머니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드십니다. 오빠를 이렇게 방치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요. 집안에만 틀어 박혀 지내는 오빠, 은둔형 외톨이인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도와주세요.

 

A: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가족으로서 참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6개월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태로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혼자 외롭게 지내는 사람입니다. 정신의학계의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로 1990년대에 처음 보고되기 시작했고, 최근 일본 농림부 차관을 지낸 아버지가 장기간 은둔하는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으로 중년이 되어버린 은둔형 외톨이들의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죠.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도 1998년 IMF 외환 위기를 시작으로 경기침체와 불황이 맞물려 청년 실업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폐인이라고 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게임중독 치료 현장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시행된 연구에서는 이들에게서 우울증상과 대인공포, 자기혐오적인 생각, 응석과 같은 퇴행적 행동과 공격적 성향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정신질환이 아닌 상태의 사회적 은둔만을 하는 경우를 말해왔습니다만, 사회적 은둔(social withdrawal)은 조현병, 강박장애, 우울증, 공황장애로 인해 올 수도 있고 사회불안장애 회피성인격장애, 자기애성인격장애. 경계선인격장애, 조현성 인격장애로도 진단 내릴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은둔형 외톨이 현상은 다양한 면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혼용될 수 있습니다.

 

사연을 주신 분께서는 가만히 두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시면서 지금껏 있으셨는데요. 일본의 자료들을 참고해 볼 때, 어린 나이에 일찍 방안에 들어갈수록, 은둔 기간이 장기화할수록 고착화되어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에 저명한 어느 일본 정신과의사의 말에 따르면, 3년부터 늦어도 5년 이내에는 은둔형 외톨이 생활에서 탈출을 시도해야만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5년 이상을 넘어서게 되면 사회의 가치관이 변해 사회 적응이 더욱 힘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한국처럼 사회변화의 속도가 더 빠른 곳일수록 더더욱 조기 탈출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는데, 문제는 가족들의 조급한 대응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멀쩡한 자식이 집안에 두문불출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초조해지기 마련이죠. 강하게 이야기하면, 정신을 차릴까 싶어 쓴소리를 내뱉지만, 이 사연에서처럼 원한을 품고 가족 내에서도 단절되어 완전히 은둔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은둔형 외톨이의 심리를 이해하고, 이들의 특성에 맞는 대응전략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사진_픽셀

 

은둔형 외톨이의 심리 이해하기.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혼자 생활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가족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제가 경험한 일부 사례로 일반화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타인의 시선을 회피하고, 불편해하는 이들에게도 남들이 자신을 나쁘게 평가할 것 같아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은둔하고 있는 상태에 대해 괴로워하는 모습이 있고, 내면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깊은 혼란과 좌절감이 공존해 보입니다. 대인관계의 거절이나 수치심, 이상적으로 바라는 상태에 이르지 못한 좌절감과 그럴듯한 명함 하나 만들지 못한 처지에 대해 자책과 무가치함을 느끼지만, 그것을 느끼지 않으려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해 버리는 모습도 관찰됩니다.

계기가 어찌 되었든지 일단 은둔이 시작되면 모든 대인관계에서 철수한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런 편안함은 은둔이 지속될수록 외부 세계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으로 전환되어 회피행동이 강화되는 계기로 작용하며 우울과 불안, 무기력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새겨집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당사자를 도울 수 있을까요?

 

은둔형 외톨이,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게 돕기

치료는 자기 발로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돕는 입장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들도 자신의 은둔 상태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면이 없지 않기에, 적절한 시기에 주변에서 적절한 도움을 주면 언젠가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당사자의 무력감에 공감하면서, 임상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접근이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 과정은 가족들과 당사자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과정이지만, 가장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이들이 병원에 내원하는 상태라면, 이미 절반의 희망이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주는 전략을 통해서 어떻게든 도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저 만만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저의 관점에서 도움이 될만한 제안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누구 탓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양육방식의 실패를 들먹이는 것도 가정환경을 탓하는 것도 이 시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왕 품은 것, 더 품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사연을 밝히기 전까지 자신의 방 밖을 나가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자신만의 대기만성형 성장드라마를 쓰고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주기만 하면 이런 상태가 강화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될 수 있지만, 이들과의 최소한의 접점을 이어가도록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는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일방적인 강요나 인터넷을 끊거나 컴퓨터를 갖다 버리는 극약처방 역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작은 목표를 세우기 위한 관계를 만드는데 주력하십시오. 그런데 그 목표는 정말로 사소하고 작은 목표입니다. 무력감과 싸움을 하는 이들이 자기조절감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하게 쉬운 목표죠. 예를 들어서 일단 이불이라도 직접 갤 수 있게 해 보고. 그조차도 당연한 것이 아닌 힘든 것이었음을 인정해주면서 나오는 의식을 이어가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한두 번 병원에 갔다고, 취업부터 하라고 등을 떠 미거나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 역시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일단 지혜를 모아 이불을 반쯤 개거나, 속옷을 빨래통에 넣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찾아봅니다. 밤과 낮이 바뀌어 있기에 조금씩 기상시간을 당길 수 있게 하거나 사람이 없는 밤에 창문을 열어 보게 하는 것이나 한 끼는 가족과 함께 식탁에서 먹는 것은 순차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일 수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정리하면, 이들의 삶은 나름대로 고단하고, 혼란스럽다는 점을 이해해주고,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내버려두지 말고, 숨겨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고 조금씩 삶의 체계와 생활리듬을 만들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치료자와 어느 정도의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이야기하며 성장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지난 글(미학적 자존감 활용하기 - 내 삶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성장드라마 쓰기)에서 언급했듯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행동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 것이죠. 결국에는 정신적 내상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패턴을 끊고,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연결되어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키워주도록 하는 대안을 찾아줄 수 있게 합니다.

밖으로 스스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딜 수 있겠지만, 느리게 적응한 이들의 시간표와 리듬에 맞춰가면서, 적당한 사회적 압력을 조금씩 느낄 수 있는 창의적인 시도를 해봅니다. 변화하기 위해서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을 해보고, 그것에 대해서 보상과 칭찬, 격려를 통해 스스로도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방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은 자신에게 여전히 있음도 알게 해 줍니다.

한 장의 메모지에 낙서거리를 주고 빈종이에 뭐라도 자유롭게 채워 볼 수 있게 해 보는 것도 같이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상대의 취향을 고려해서 좋은 꿈을 꾸었다면, 하다못해 편의점에서 로또라도 사보는 것이 어떨지 의존하며 합의하에 과제를 내어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나올 수 있는 결심과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인공임을 상기시켜 자신을 돌보는 기능을 회복하도록 질문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방 밖으로 나온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어떨까?'

스스로 자신을 구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은둔형 외톨이를 나오게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자문해 보게 할 수 있습니다.

은둔을 지속시키는 문제 패턴을 깨뜨려볼 수 있는 질문을 하되, 다만 바뀔 미래를 생각하며, 변화의 동기를 자극해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행동 중 가장 쉽게 포기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만을 바꾸도록 집중합니다.

 

쉽지 않죠.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은 왜 나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 도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지? 효과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질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 스스로도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충분하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도록 하는 원칙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정신적 내상을 겪고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간 이들이 결국 술술 털고 나올 수 있는 계기를 찾는데 저의 부족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고, 이들을 향한 사회적 해법도 우리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기회가 된다면, 신해철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오빠에게 꼭 들려주고 싶네요. 오빠와 사연 주신 가족분 모두 힘내시길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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