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아있는 자존감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먼저, 자아이미지를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아이미지는 자기자신을 떠올리며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으로 일단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빈 종이에 반을 접어서 왼쪽에 자신의 장점을 적어보시고, 오른쪽에 자신의 단점을 적어보세요. 무엇을 적을까 생각이 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자기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대략적으로 어떤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장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십시오. 장점이 잘 떠오르지 않으시면, 나를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 대해서 말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써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꼭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을 적기보다 이순신이 말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대개 우리는 잘하고 있는 모습보다,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더 주목하기 쉽습니다. 인생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하지만,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느냐입니다. '해봤자 안될 것이다. 소용없다.'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부족하지만, 더 잘하고 싶다'라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조건적 자존감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자존감 회로의 불이 들어오는 상태라고 했죠. 그런 기준에 초연히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사람은 저마다 출발점은 다른데 같은 곳을 향해서 뛰어가라고 한다면, 자존감은 유리한 조건을 타고난 승자만이 누리는 트로피로 변질되기 쉽죠. 또한, 남들보다 높은 기준을 달성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조건적 자존감은 뿌리가 깊습니다. 공부를 잘해야만, 혹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양육환경에서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다 보면,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조건적 자존감의 토대가 형성되기 쉽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욕구는 소중히 다뤄지지 않게 되고요. 그런 존재가 아니면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이 조금만 자신을 나쁘게 보는 것 같아도, 위축되고, 금세 주눅이 들 수 있습니다. 남들의 눈치를 봐야 하니, 자기 자신을 돌보는 건 힘이 들죠. 내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남의 시선으로 삶을 사니,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버린 식민지 국민의 처량한 신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미학적 자존감으로 통통하게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독립선언서 초안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것으로 완성해 보세요.

1. 나는 그동안 충분히 아파했다. 이제 변화할 때가 되었다.

2. 이제 나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챙겨주려고 결심했다.

3. 나는 오늘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선언서를 낭독해도 당장 변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곁에서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조건적 자존감에 길들여진 생활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학적 자존감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사는 삶입니다. 자신만의 정신적 성과물을 조금씩 이뤄가는 삶에 가깝죠. 남이 아껴주지 않더라도 내가 더 아껴주고, 더 멋있어지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부족하고 모자라서 멋있어지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좋아하기에 더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변하려 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코트가 얘기했던 우리 ‘내면의 아이(the child within)’는 서툽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이루고 싶어 했던 아이입니다. 성인의 시각에서 그 내면의 아이의 손을 잡고, 등도 토닥토닥 두들겨주고, 서툴지만,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시면서 그 아이가 미소 지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자존감을 이해하는 데 있어 두 가지 기본적인 것을 알고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윌리암 제임스의 자존감 공식인데요. (자존감=성공success/욕심pretentions)이라고 1890년에 정의한 이론입니다. 분모인 욕심을 줄이거나, 분자인 성공을 증가시키면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공식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심을 줄이는 것은 잘 되지 않으니 성공을 추구하다 보면, 자존감은 조건적인 성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다른 하나는 애브라함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 안전욕구가 채워지면 소속감과 자존감을 추구하게 되고, 마침내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아간다는 이론입니다. 아무리 먹고사는 것 때문에 힘들더라도,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에 대해서 관심 있어하고, 인간답게 대우받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존재입니다. 자존감을 느껴야 하고, 그 자존감을 다른 가치 있는 존재에게 입증받고 싶고, 그 자존감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점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구가 있기에 자존감을 높고, 낮음의 관점보다 성장하는 시각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아의 맨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이미지는 자기 자신이 믿고 있는 얼굴과 같습니다. 자아이미지는 현재의 나라고 여겨지는 관념인 자아감을 토대로 이뤄지는데, 엄밀히 말해, 자신이 살아온 발달과정의 경험, 자신의 가치관과 성격이 종합적으로 엮여서 나온 존재에 대한 최종평가에 가깝습니다.

자존감에 있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자기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을 어떤 시각에서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강조해드리는데요. 내면세계에서는 보이는 현상보다 자신이 믿고 있는 현상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오래된 자아이미지일수록 이런 단정적인 믿음을 내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아이미지를 통해 자기가 받아들인 내면의 잘못된 해석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못생겼다고 바라보는 자아이미지에서는 그 사실 자체보다 ‘실망스럽다.’ ‘사랑스럽지 않다.’ ‘매력이 없다’고 받아들인 해석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아이미지는 존재 자체에 대한 해석이 거의 믿음에 형태로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도 마찬가지죠.

나 자신이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낄 수 있으며, 그런 자신을 좋아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도,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 자신의 본모습을 남들이 알면, 실망할 것이기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이 자아이미지에 자신의 인생능력과 가치에 대한 평가가 들어가 있는 자아효능감과 자신감의 근거들이 적절히 배합되어있는데요. 이 자아이미지가 구조화되어 단단해지면, 자신을 바라보는 자아이미지는 안정적이며 일관된 모습을 띄게 됩니다. 이런 자아이미지는 내적, 외적 근거들이 쌓이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왜곡된 믿음이 들어간 자아이미지를 수정해서, 그것을 긍정적이며, 건설적이며, 균형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미학적 자존감의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이 되겠습니다.

 

사진_픽셀

 

미학적 자존감을 균형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바꿀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타고난 조건, 부모나 외모와 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을 나의 선택과 책임으로 탓하지 않으며, 남아있는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죠. 자기 인생의 활동무대를 정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 애쓰고 있는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실 필요가 있겠습니다.

빈 의자에 정말 소중한 내 친구가 앉아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그 소중한 내 친구가 나와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놓여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친구에게 당장 뭐라고 말씀해 줄까요? 

"이 바보야. 너 그럴 줄 알았다. 실망스럽다. 한심해. 넌 그것밖에 못하니? 정신 좀 똑바로 차리라고!!"라고 함부로 말하진 않으실 겁니다. 그런 친구라면 아마 다시는 보려고 하지 않으시겠죠. 대신에 "힘들지만, 괜찮을 거야.” “괜찮다고.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하고 말해주시는 분이 대부분이겠죠. 잘하려는 마음으로 여태껏 버텨낸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사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으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순신이 남은 12척의 배로 명량 해전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웠던 것처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책임을 다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이 책임질 수 있게 상황을 만듭니다. 그냥 때우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드라마를 써낼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성장드라마를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게 남아있는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고, 또한 그 가치 있는 자신에게 존중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적절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존재인 자기 자신에게 걸맞은 대우를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고마움의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학적 자존감으로 통통한 사람이 주변 여건에 초연하게 품격 있는 긍정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인생의 위기와 시련, 실패를 만나 조건적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지면, 인간은 삶의 욕구와 의미를 잃고, 부정적인 사건이 주는 영향력에 더욱 약해집니다. 원래부터 약한 존재인 인간은 믿는 근거가 취약해지면, 그런 스트레스에 견디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로지 환경에 따라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의식적으로 미학적 자존감을 지켜내는 선택을 해내는 것이야 말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내는 내면의 잠재력의 우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학적 자존감을 통통하게 하는 미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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