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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자존감을 높이는 삶을 선택하기전 국민 마음통통프로젝트, 미학적 자존감을 통통하게 - 마음매력성형1.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5.20 00:21

[정신의학신문 :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오늘은 미학적 자존감의 뼈대를 이루는 자아이미지를 아름답게 만드는 마음매력성형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쉽게 말해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까?"에 관한 글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존감을 통통하게 만들기 위해서 조건적 자존감보다 미학적 자존감에 집중해야 합니다. 일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스러운 자존감이죠. 외적근거보다 주로 내적근거로 통통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이 있으면, 비루한 현실의 삶에도 불구하고, 삶이 소소하고 다양한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미학적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아이미지를 분석해볼까 합니다. 조금 생소하고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는데요. 그래도 자존감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것 같아요.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는 감정, Self esteem이라고 하죠. 대개 자존감이 높다/낮다로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얼핏 자존감이 높다/낮다란 말부터가 열등감과 친숙하면서도 밀접한 관계임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자존감은 _____이다."


자신만의 정의를 넣어보시죠. 어떠실까요? 

자존감이 높다는 인물을 꼽자면, 저는 충무공 이순신이 떠오릅니다. 원균이 이끈 칠전량해전에서 대패한 조선수군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임금 선조는 12척의 남은 수군을 정리하고, 육군과 합세하라는 명령을 내리죠. 선조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는 수군을 폐하는 명령에 물러서지 않고,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렸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은 적으나, 신의 몸이 살아있는 한, 적은 감히 이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영화 ‘명량’에서의 대사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12척의 배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싶었지만 이순신은 다릅니다.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그리고 선조의 명령에 당당히 자기주장할 수 있는 것도 자존감을 지키는 삶의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어째서 그럴지 궁금하시죠?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서 나온다고들 하죠. 이런 평가의 요소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고, 남에게 인정받을만한,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과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은 쓸모 있다는 생각도 자기효능감에서 나옵니다. 대개 사랑받은 경험이 어느 정도 있으면 기본적으로 나는 사랑받을만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믿어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감은 자신은 괜찮은 존재, 사랑받을 만하다는 믿음에서 풍겨져 나오는 감정이기에 외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괜찮게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성적이 좋거나 시험에 합격을 했거나 승진을 했거나 삶이 순탄하게 풀리는 상황과 같이 보이는 삶의 현실에서 외적 근거가 더해지면 좀 더 높아지겠죠.

자신감이 있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기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순신에게도 그런 기대가 엿보입니다. 물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각오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반전의 드라마로 만든 그의 멘탈도 한몫했겠죠.

자신감이 있으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기 쉽습니다. 결국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괜찮게 여긴다면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이 울타리가 되어 우리 삶을 생동감 있게 움직이게 하지요. 무기력을 떨치고 도전하는 힘도 여기서 나옵니다. 대인관계도 안정되게 꾸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 자신과 맺는 내적대상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인관계도 무척 힘들어집니다. 더불어 고단하고 치열한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힘의 날개도 꺾일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려는 삶의 동력이 발동하지 못하니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으로 구성되는 자존감을 미학적 자존감인, 자아이미지의 측면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좋아하시나요? 여러분은 자신을 좋아할 만하다고 여기시나요?"

자존감이 높은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자기 자신과 맺는 내적대상관계를 점검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자신을 좋아하려면, 자신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불리한 면까지 균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적절히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의 문제만을 보며 사는 보통 현대인들에게 조금 부족해질 수 있는 능력이지요. 아마도 부족함을 강요당하는 현대인들, 특히 자신을 버리면서 조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익숙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의 판단을 "나는 잘 나가는 사람인가?"의 기준으로 인식해서 살다 보면, 조직에서의 평가가 곧 나의 평가로 직결되죠. 학교 성적이 곤두박질치면, 마찬가지로 죽는 것을 생각하는 꼴이죠.

자신의 가치를 오로지 외적평가에 두면 조건적 자존감만 비대해지다가 웬만한 성취를 하지 않고서는 자존감이 바닥인 삶의 나락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좋은 다른 면을 균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괜찮은 면도 더 가치 있게 보실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돌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관리나 자기성장에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할 만한 존재,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은 시시하거나 하찮게 보여 결국 눈에 보이는 돈, 명예나 실적과 같은 외적보상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참 잘 나갈 때야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그런 삶을 향해서 정신없이 좇아가는 삶은 불꽃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의 처지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자신을 무시하고 상처 주는 행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자존감과 대조되는 열등감은 무엇일까요?

열등감은 사회적 분위기상 참 꺼내기 민망한 단어가 되어버리긴 했습니다. 자신에게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요.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보이는 감정을 흔히 열등감이라고 알고 계신데요. 열등감은 자존감이 낮을 때,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게 되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입니다.

사회적 관계가 필수적인 인간에게 남과 비교하게 되어 생기는 열등감은 본질적인 감정일 수 있는데요. 다만 조건적 자존감에 익숙해져, 진정한 자존감인 미학적 자존감으로 우리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지 못할 때, 우리는 평상시 무시할 수 있었던 열등감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평상시 열등감은 늘 있었지만, 자존감이 어느 정도 커버해서 덜 느꼈던 감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건적 자존감은 스펙트럼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대적인 열등감의 정도가 적을 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낮게 인식할 때, 우리는 타인에 대한 가치에 상대적으로 주목하는 열등감을 더 깊게 느끼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자존감도 열등감도 모두 자신을 평가하는 하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선 지나친 열등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못생겼다. 나는 무능해.' vs '나는 (남보다) 못생겼다. 나는 (남보다) 무능해' 처럼요.

걸핏하면 별것도 아닌 일로, ‘너, 나 무시하냐?’ 핏대를 세운다면, 심리적 바탕에는 낮은 자존감이 깔려있다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탕에는 낮은 자존감의 상태를 반영하는 열등감이 존재합니다.

열등감은 곧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감정 반응입니다. 자신이 작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상처 받고 눈물도 나고, 괴로워하기도 하며, 극단적인 생각에 자주 빠지게 할 수 있죠.

 

능력, 학벌이나 스펙, 집안(흙수저), 실직,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등으로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겠지만, 그런 불행한 사건을 겪는다고 반드시 우리 존재가치마저 하락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자존감을 지키는 삶의 해석과 선택을 하면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내는 회복탄력성을 통해 인생반전을 이뤄내는 역전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우리의 뿌리 깊은 열등감을 건드려져, 무의식적으로 존재 차체에 대한 판단으로 귀결되는 감정이 될 때, 열등감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하거나, 심리적인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사진_픽셀

 

두 번째로, 우리 자신을 좋아하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은 부족할 수 있어도, 점점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괜찮게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마음을 포기만 하지 않으면 말이죠.

열등감조차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열등감을 기반으로 건설적인 성장의 동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주장한 사람이 ‘미움받을 용기’의 알프레드 아들러였었죠. 열등감이 느껴진다면, ‘아, 왜 난 이모양인가?' 자신을 무시하기보다는 ‘내 자존감의 충전표시불이 들어왔구나’ 생각하시며 견디는 것은 어떨까요?

한번 멋진 사람이 영원히 멋진 사람이 아닐 수 있듯이. 어느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을 조금 인정하기만 한다면, 조금씩 멋지게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은 자랄 수 있습니다.

대학의 한 구절에 ‘日新 日日新 又日新(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로 새로워 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매일을 새롭게 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키가 작아서, 학벌이 딸려서, 가진 돈이 없어서, 집안이 힘이 없어서, 시험에 또 떨어져서, 살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나는 실망스러운 존재야’라는 평가가 객관적으로 들리시나요?

현재 자신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어도, 현재의 여기까지 꿋꿋하게 삶의 단계를 밟고 와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수고했다는 마음은 자존감 있는 하루하루를 지켜내기 위해, 그런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느끼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런 시선은 본질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보는 따뜻한 엄마의 시선이죠. 결정적인 결함이나 잘못,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체적으로 괜찮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스러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귀여운 아기를 보듯 자기 자신을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스럽게, 아름답게 말이죠.

내 존재가 태어났을 때,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모의 큰 기쁨이었듯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그렇게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미학적 자존감의 토대입니다. 조건적 자존감이 아닌 미학적 자존감을 통해 주변에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의 영향력을 끼치고, 주변인들에게도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조건적 자존감이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다면, 미학적 자존감은 자신을 넘어 주변 공동체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고마운 삶의 영향력을 끼칩니다. 엄마가 나 자신을 바라봤었던 그 시선으로 사랑받은 자의 자신감이 뿜어져 나올 겁니다. 그것이 내면의 빛이죠. 얼굴에도 눈빛에도 빛이 뿜어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성취를 향해가는 현대인들은 자존감이 떨어지는 지경에 쉽게 처할 수 있습니다. 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던 우리들은 엄친아(엄마친구아들)나 엄친딸에 의해 더 비교당하고, 실적이나 우리가 만들어내는 소득으로 비교당하는 사회에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우리의 존재 자체의 절망적 상황으로 인식해버릴 우려가 있습니다.

조건을 중시하는 사회에는 존재 자체로 비교당할 소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충분히 그래 왔으니까요. 경쟁사회에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남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 해내려는 노력과 과정 자체가 무시당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다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남아있는 자존감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조건적 사회에선 아무리 미학적 자존감을 외쳐도 조건적 자존감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추구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여기니 그런 분위기에서 미학적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한낱 생경한 구호의 나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미학적 자존감을 높이는 삶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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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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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8 08:23:15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존감이 낮아 괴로운 밤 많은 힘이 되었어요.   삭제

    • 김상훈 2019-05-22 14:27:18

      좋은 기사네요. 고맙습니다.
      다음 편 기대됩니다.^^   삭제

      • 이석근 2019-05-21 12:02:25

        외부 조건에 의해 항상 제 가치가 왔다갔다 하여 고통스러웠는데, 이 글을 보며 주체적으로 제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다만 너무 넘치지않게. 너무 자기애가 심하면 그 또한 병이니깐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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