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조현병 환자와 연관된 사건사고 뉴스가 요즘처럼 많이 나온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지난 4월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진주 방화∙살인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범인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또 최근에는 충남 공주시 당진-대전고속도로에서 조현병 운전자가 역주행하는 바람에 정면충돌 사고가 났고, 그의 어린 아들과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이 사망해 모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보도했듯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발표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조현병 환자의 범죄 비율은 0.04%입니다. 일반인의 0.1%가 조현병 환자라는 통계와 비교하면 오히려 낮은 비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사건사고로 조현병에 대한 불안과 우려는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 현실입니다.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떤 행동을 지시하는 환청이나 타인이 자신을 해치거나 감시한다는 피해망상에 몰입되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은 이러한 환청이나 망상을 실제 일어나는 현실 상황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극도의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 감정을 환청이나 망상과 연관되어 있는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할 경우 안타까운 범죄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이 가해자인 사건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납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는다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조현병의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약물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약물치료가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는지가 향후 병의 경과와 예후를 좌우하게 됩니다. 사실 조기에 약물치료를 받아서 빨리 증상이 호전된 환자의 경우, 환자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겪는 환청, 망상 등의 증상을 병적인 것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이를 병식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스스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환자의 증상을 알아채게 되었을 때 환자를 잘 설득하여 병원을 방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환자의 환청과 망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 환자가 상당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네가 안 좋은 생각들 때문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보인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너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권고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일 환자가 증상으로 인해 자신의 안전에 위험이 발생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개연성이 있을 때는, 가족들이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여 부득이하게 보호입원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정신과 약을 먹으면 사람이 둔해진다, 약에 의존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와 같은 잘못된 편견들이 약물치료의 큰 장애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항정신병약을 투약했을 때 신체적인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약물 용량을 줄이거나, 부작용 방지약을 병용하거나, 항정신병약을 다른 종류로 교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다. 약물조절이 잘 이루어지면 부작용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생활합니다. 결국 약물치료를 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일부 단점보다는 장점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큽니다.

약물치료 없이 마음을 강하게 먹어서 조현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로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약물치료를 잘 받던 환자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약을 임의로 복용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증상이 다시 악화돼 때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개 약을 중단하여 증상이 다시 재발하거나 악화되면, 이전에 복용하던 약물의 용량보다 더 고용량을 써야 하거나 새로운 약을 추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비유를 하자면 결핵에 걸렸을 때 결핵 약을 충분한 기간 복용해야 하는데 임의로 약을 중단하면 결국 결핵 내성균이 생겨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약으로 더 오랜 기간 복용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 특히 약물치료에 대한 편견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내과나 외과 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유독 정신과 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거나 주저하는 모습, 고혈압약이나 당뇨약을 복용하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유독 정신과 약 복용에 대해서만 강한 거부감을 가지는 모습들은 유독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견입니다.

 

사실 조현병은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2011년 정신분열증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까지 했던 질병입니다. 현악기가 잘 조율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게 ‘뇌기능이 잘 조율되지 못해서 나타나는 병’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같은 이유로 2002년 일본은 통합실조증, 홍콩은 사각실조증으로 병명을 바꿨습니다.

이름에서 오는 부정적인 느낌은 지웠지만, 이제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기 위해선 현실적인 환자 관리시스템이 필요해 보입니다. 실제 진주 방화∙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조현병 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지 2년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고, 당진-대전고속도로 운전자 역시 “조현병 치료 중인데 최근 약을 먹지 않아 위험하다”며 아내가 가출신고를 했습니다. 결국 조현병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조현병이 관리되느냐, 관리되지 않느냐의 문제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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