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살면서 낯선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고, 그들과 원하든 원치 않든 같이 대화하거나 일해야 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에 유난히 목소리나 몸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날 비웃지 않을까’ 걱정하거나 ‘내가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지요. 누구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 앞에선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생각이 심각한 자존감의 저하로 이어지고, 급기야 학업이나 직장생활, 대인관계 맺기 등을 포기해야 하는 수준까지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불안으로 고통받는 분들은 불안장애의 하나인 ‘사회불안장애’가 아닌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사회불안장애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 △양육환경 △충격적인 경험 등으로 분석됩니다. 먼저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있는 집안의 1차 친척에서 환자가 없는 집안보다 3배 높게 사회불안장애가 관찰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 부모가 위험하고 낯선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회피하는 경향이 높으면 아이도 이러한 경향을 학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타인들 앞에서 불안과 떨림을 보였을 때 이에 대해 지적을 받거나 핀잔을 받으면 이를 큰 충격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사회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형태로 생각을 반복하는 패턴(인지적 왜곡)이 나타나 사회불안장애로 증상이 굳어집니다.

 

사회불안장애에 대한 의학적인 진단기준(DSM-5)은 이렇습니다. 

A. 타인에게 면밀하게 관찰될 수 있는 한 가지 이상의 사회적 상황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공포와 불안 반응을 보인다. 사회적 관계(예: 대화를 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 관찰되는 상황(예: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자리), 타인들 앞에서 수행을 하는 상황(예: 발표) 등이다.

B.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방향(예: 수치스럽거나 당황한 것으로 보임. 타인을 거부하거나 공격하는 것으로 보임)으로 행동하거나 불안을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C. 사회적 상황은 거의 예외 없이 공포나 불안 반응을 유발한다.

D. 사회적 상황을 아예 회피하거나 혹은 공포, 불안을 느끼면서도 참는다.

E. 공포나 불안 반응은 사회환경이나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인한 실제적인 위협과 관련이 없어야 한다.

F. 공포, 불안, 회피반응은 지속적이며 대개 6개월 이상 계속된다.

G. 공포, 불안, 회피반응은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주며, 사회적·직업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한다.

 

사회불안장애 환자가 갖는 불안의 핵심은 ‘상대방이 나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릴 것 같다’는 두려움입니다. 대개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일에 있어서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자 자신은 사회불안을 매우 큰 단점으로 여기겠지만, 타인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만큼 많은 노력하고 책임감도 강하기 때문에 직업적 성취를 이룰 가능성도 높습니다. 때문에 환자분들이 자신의 단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이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불안장애의 치료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 2가지를 주로 같이 병행합니다.

약물치료의 경우 1차적으로 항우울제를 복용합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서 2~4주 정도는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이 많이 심할 경우 항우울제만으론 증상 완화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때는 항불안제를 병용하여 치료받으면 증상 완화가 더 빨리 이루어집니다. 특히 발표나 시험 같은 특정 상황에서의 불안이 걱정이 될 경우, 30-60분 전에 propranolol(Inderal, indenol 등의 상품명)이란 약을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해서 환자가 임의로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최소 1년 정도는 꾸준히 약물유지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중단할 때는 담당의사와 함께 계획을 세워서 용량을 서서히 줄여야 증상의 갑작스러운 악화나 재발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환자의 ‘자동사고’를 찾아내서 그 생각을 교정하고(인지치료),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에 실제로 노출(행동치료)시키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자동사고란 환자가 불안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직장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가 눈을 못 맞춰 불안해지면 순간적으로 ‘동료가 나와 더 이상 말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을 것이다. 난 역시 구제불능이다’ 같은 생각이 떠오를 때 이를 자동사고라고 지칭합니다.

인지치료에선 환자와 치료자가 환자의 자동사고를 찾아내어서 인지재구성을 합니다. 대개 환자의 자동사고는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만 생각하고 이를 사실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가 생각하는 가능성 외에 다양한 경우의 수를 기록하여 실제 환자의 자동사고가 사실일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 불안이 완화될 여지가 있습니다.

행동치료는 체계적 탈감작법을 가장 많이 활용합니다. 환자가 자신이 가장 불안을 적게 느끼는 자극에서부터 가장 심한 불안을 느끼는 자극까지 단계별로 미리 리스트를 작성하여 순차적으로 노출시킵니다. 노출 전에 미리 약물이나 근육 이완, 심호흡 등을 환자가 배워서 충분히 불안을 견딜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단계별로 자극에 노출시키면 불안을 이전보다 훨씬 덜 느끼게 되는 원리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자신의 불안을 미리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도 상당히 좋은 방법입니다. 발표나 연설을 앞두고 있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니 많이 긴장되고 떨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 뒤 발표하면 한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발표자가 얼마나 긴장하고 떠는지 여부보다는 발표내용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또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을 대할 경우 부정적으로 여기기보다는 ‘순진하고 정직한 사람 같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불안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동물원의 작은 동물들이 처음엔 인간을 무서워하다가 점차 무서워하지 않게 되거나, 유명 연예인도 신인 시절엔 긴장된 순간들을 겪었다는 것이 그 예가 되겠지요.

내가 떨리고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모습에는 진화심리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선 배짱 좋고 잘 떨지 않는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높은 서열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고, 긴장하면 약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 앞에서 긴장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불안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완벽하려고 하지 말자, 실수를 좀 해도 괜찮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속삭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의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이다.’라는 말도 되새겨봄직합니다.

 

* 참고문헌:  사회공포증 인지행동치료 지침서, 대한불안의학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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