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인들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할까요?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업무량이 너무 많아 야근이 잦을 경우, 혹은 집과 직장이 너무 멀어서 출퇴근하느라 지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상황들을 압도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데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이란 표현을 정신의학적 용어로 치환하면 ‘성격장애(인격장애)가 의심되는 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성격장애가 의심되는 상사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A 과장은 최근 인사발령에서 영업부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A 과장은 영업부장인 B 부장에 대해 평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B 부장과 일하는 것이 내심 기대됐습니다. B 부장은 일 처리가 합리적인 듯했고, 부원들의 개인사정도 융통성 있게 이해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B 부장은 예상과 다르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먼저 B 부장이 실제 영업부장으로서의 업무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B 부장은 회의시간에 부원들 앞에서 사회 고위층 인사들과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 영업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B 부장은 경쟁자인 옆 부서 C 부장에 대해 비아냥대는 어조로 평가절하하기 일쑤였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못 내리는 B 부장 때문에 회의에서는 A 과장이 나서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A 과장에 대해 B 부장이 경계하고, A 과장의 업무상 조언에 대해서도 불쾌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A 과장은 B 부장 밑에서 일하는 게 점점 힘겨워졌습니다. 그러던 중 B 부장이 예전 직장에서도 다른 동료들을 이용한 뒤 배신해서 큰 손해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A 과장은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사진_픽셀


어떻습니까? A 과장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겠죠? A 과장이 B 부장의 성격문제에 대해 내린 추론이 맞을까요?

B 부장이 자기애적 성격장애일 경우 A 과장의 추론이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실제능력을 과장되게 인식하고 있으며,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이 있고 자신을 잘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B 부장이 C 부장을 의식하는 것처럼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을 상당히 의식하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위하는 척합니다. 자신이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부원들의 개인사정을 잘 봐준 것이 그 예가 되겠지요.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예민하여서 자신의 자존감에 손상을 입었다고 여길 경우 우울해하거나 상대방에 대해 큰 분노를 품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성격장애의 소유자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이 손해를 입거나 상처 받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모든 치료의 시작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 즉 병식에서 출발합니다. 성격장애는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의 부적응적 행동에 대한 불안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성격장애 중에서도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변화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끼기에 그만큼 치료에 동참하게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환자가 우울한 기분이나 분노로 인한 불편함을 느낄 때 이를 완화하려고 스스로 약물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는 있기 때문에 이때 항우울제나 기분안정제 등의 약물치료를 하면서 정신치료를 같이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정신치료 과정을 지속해 나가기가 쉽진 않지만, 집단치료를 시행했을 경우 자신의 성격문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치료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B 부장과 같은 자기애적 성격을 갖고 있는 여러 직장 상사들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A 과장을 비롯한 수많은 부하직원들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좋을까요?

사실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직장상사에게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간 큰 부하직원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마 눈치챈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직장상사와 같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부서로 보직변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빨리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일단은 상사의 행동패턴을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사가 어떤 상황에서 불쾌한 반응이나 분노를 보일지 미리 예측을 해서 최대한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사에게 업무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경우 직설적인 표현은 가급적 자제하고 최대한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것도 좋겠지요. 무엇보다 상사가 자신에게 호의나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할 경우, 회사 규정에 어긋나거나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사항이면 당연히 받으면 안 될 것입니다. 상사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날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업무 외의 일에선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조직사회에서든 성격장애가 있거나 성격장애까진 아니더라도 성격장애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사람이 엮였지?’라고 한탄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성격유형의 사람인지 잘 파악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직장인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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