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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고 또 증오해 - 변하는 건 너일까, 내 마음일까.이상화(idealization)와 평가절하(devaluation)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5.16 09:52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 식상한 말이지만 연애든, 짝사랑이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람은 마음속에서 지우려 한다고 지워지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그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지내다, 불현듯 그토록 사랑했던 누군가를 더 이상은 기억조차 하지 않고 지내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끝났음을 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과 증오는 닿아 있다. 미움도 그를 내 마음속 한편에 두어야 할 수 있다. 강렬한 증오는 사랑 못지않게 그 대상이 내 마음을 차지하는 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면담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한없이 좋게 보다, 사소한 일로 실망하고 돌아서는 대인관계의 패턴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누군가에게 흠뻑 반해 사랑에 빠졌다가 조그만 갈등이 씨앗이 되어 이별에 이르기도 하고, 누군가와 만난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도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해 가슴 깊이 믿고 의지하다 이내 실망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나와 잘 맞고 좋을 것이란 기대는 접은 지 오래. 그렇지만 적어도 한 번 좋게 생각한 사람은 계속 그렇게만 남아주면 좋겠는데, 오히려 기대할수록 실망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랑을 예로 들면, 자신 옆의 단 한자리를 허락할 정도로 그토록 빠져들었던 사람이 헤어질 때는 세상 다시없을 몹쓸 사람이 된다. 차라리 깊이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내게 언제고 좋은 사람으로 남았을까. 우리는 왜 언제나 누군가에게 깊이 빠지고, 또 절망할까.

 

가족과는 달리, 세상은 수없이 많은 잣대로 나 자신을 평가하고 배척한다. 시험 결과, 지위, 재력, 외모...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조건은, 역설적으로 이를 갖춘 이가 드물기 때문에 각광받는다. 심지어 가족조차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고 세간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기도 한다. 성과 지향, 물질 지향이 세상을 메우며 이러한 경향은 점점 짙어져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할머니가 지어준 밥, 부모의 손을 잡고 놀이동산을 걷던 일, 또래 친척들과 어울리던 시골의 동산, 유달리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학교 선생님의 품속, 의식 혹은 무의식 속으로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마음 곳곳에 자리 잡는다.

 

냉정한 세상 앞에 좌절하고 배신에 절망하다 보면 그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한없이 포용해주던 포근한 기억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깊은 안식을 주는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한다.

그렇게 허전한 마음, 그리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 깊이 들어와 나를 위로해주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유난히 듬직한 그의 뒷모습에서 언제고 나만을 아껴주던 아버지가 떠오를 수도 있고, 다정한 말투와 세심한 배려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이나 느낌은 의식할 수도, 무의식에서 일어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의 그를 대하며, 너무나 오래되어 잊고 지냈던 무조건적인 포근함을 느끼는 데 있다.

물론 잘생긴 외모나 능력 같이 생물학적인 요소가 호감에 많은 영향을 미칠 터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납득할 수 있는 사랑 이상으로 말로 설명하기 힘든 끌림을 경험한다. 타인을 그저 좋은 상대로만 바라보고 상상하는 경향성, 이상화(idealization)다.

 

사진_픽셀

 

이러한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 내 삶, 내 마음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삶이 외롭고 힘겨울 때 마음에 상처가 정도가 심해 도무지 홀로 감내하기 힘들 때 이를 어루만져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된다. 조그만 끌림으로 그를 나의 구원자로 여기는 마음, 이상화의 덫이다.

소개로 만난 그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친구로 지내던 그의 눈웃음이 예뻐 보인다. 미처 몰랐던 동료의 세심한 배려가 감동적이다. 그들의 사소한 모습이 남모를 내 마음 깊은 상처를 다독이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오래 전의 행복했던 그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작은 모습만으로, 내 마음을 치유해 줄 사람을 비로소 만난 것만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진다.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나를 실망시켰던 사람들과는 달리 너무나도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미움이 사랑과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것처럼, 누군가를 모든 면에서 나쁘게 바라보고 폄하하는 경향인 평가절하(devaluation)는 이상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상화가 빛이라면, 평가절하는 그림자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누군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 이상화라면, 반대로 그러한 기대가 좌절될 때, 사람에게 데인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다시 떠오를 때, 그 아픔을 느끼게 한 대상을 폄하하고 오직 나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평가절하다.

그러나 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의 마음은 그 하나하나가 깊은 바다와 같다. 그 위를 떠다닐 뿐인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그 깊이가 얼마인지,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제각각 우주 같은 그 공간 안에는 아름다운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오늘 하루, 나 자신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기쁨과 고뇌가 마음을 들락거렸는지. 타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내게 따뜻한 누군가를 기대하지만, 한없이 좋았던 사람도 어느 날 다른 사람 같이 내게 상처를 준다. 이는 안타깝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일 뿐, 그래서는 안 되거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알 수 없다. 나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이, 몇 마디 말, 몇 가지 표정과 행동으로 전해지는 타인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우리는 그를 안다고 생각할 뿐, (스스로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서로를 느끼고, 서로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서도록 노력할 뿐이다.

이상화와 평가절하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상대의 조각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좋은 면만, 혹은 싫은 면만을 분리하여 그의 전체로 삼아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면, 증오할만한 면이 있다. 하지만 오직 괜찮기만 한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기만 한 사람은 드물다. 특별하거나 두려운 일에서가 아닌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다만 마음의 눈은 언제든 그들을, 심지어 같은 사람을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사람으로, 또는 세상에 오지 말았어야 할 나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상화와 평가절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경향들이 편안한 관계를 이어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화되는 상대에 대한 무한한 기대는 그에게 부담스러운 것이고, 평가절하로 인한 폄하는 상대에게 불쾌하고 억울한 일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신뢰는, 때로 다투고 어긋나며 또 함께 웃는 시간 속에 쌓인다. 이상화한 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 평가절하한 상대에 대한 냉대, 이 모두가 관계의 단절을 부른다. 그렇게 떠나보낸 인연들 속에는,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소중한 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누군가가 마냥 좋아 보여 그에게 너무 깊게 빠져드는 중이라면, 혹은 누군가가 나쁘게만 보여 그를 증오하게 되는 중이라면 조금만 마음의 발걸음을 늦추자. 좋아하는 이를 경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좋게 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응당 좋고 나쁨이 함께 있는 누군가를 그렇게 좋게만, 그리고 나쁘게만 보는 내 마음은 어떤지를 돌아보자. 삶에 지쳐 사랑에 고픈 건 아닌지, 그 기대가 좌절되어 실망하진 않았는지.

그래도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는 마음의 고삐를 잡기가 도저히 힘들다면, 한 가지 사실만은 기억하자. 그도 나처럼 그저 그런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글을 쓰며 삶에서 스쳐간 얼굴들을 하나둘 떠올려 본다. 깊이 좋아하고, 또 미워했던 이들. 이제 와서 구태여 그들을 폄하하거나 미화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들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내 마음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비로소 떠올린다. 그들도 단지 행복하고 싶었던 평범한 한 사람이었을 뿐임을. 그리고 내 마음에서 그들을 비우고, 그 빈자리를 정돈하려 한다. 그리 대단하게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이들, 하지만 함께 하면 왠지 따뜻하고 기분이 좋은 이들을 위한 내 마음속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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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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