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몸이 아픈가요?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우울증의 의학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그 원인은 심리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원인도 많이 해당됩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몸도 우울해지기 때문에 신체증상도 꽤 많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울증을 정신질환이 아니라 ‘전신질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신체질환으로는 예를 들면, 갱년기, 갑상선 질환, 수술 후, 암을 선고받았을 때, 항암제 투약 또는 약물의 부작용, 뇌졸중, 중풍 등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호르몬 이상(갑상선 호르몬, 여성호르몬 등),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이상(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신체적인 원인 외에도 심리적 원인으로는 완벽주의, 의존적인 성격, 낮은 자존감이 우울증에 취약합니다. 사회적인 원인은 원치 않는 충격적인 일이나 부정적인 사건(이혼, 사별, 파산)이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치료의 경험을 조사해 보면, 7.8퍼센트 정도만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도움을 청합니다. 11.1퍼센트는 자살충동을 경험했지만, 100퍼센트 중 67.8퍼센트는 병원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호주나 미국은 30, 40퍼센트가 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에 비하면 아직도 우울증을 병원에 가야 하는 신체질환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사진_픽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과나 상담소를 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약해져서 우울증이 생겼다는 것을 스스로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내 의지가 약해서 온 문제이지, 뇌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이라는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정보법이 우선이기에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회사나 결혼하려는 상대방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조사해 볼 수 없습니다.

한편, 어떤 분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선생님의 자녀라도 이 정도라면 약을 먹이시겠어요?” 저는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약에 의존하거나 현재 상황을 도피하기 위해서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은 신체의 호르몬을 조절해주는 약이 필요합니다.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에는 2-3주만 약을 먹어도 신체증상이 많이 완화되는데 굳이 안 먹을 이유가 있을까요?”

대다수 환자분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약물을 되도록 빨리 끊으려고 듭니다. 정신과약을 한번 먹으면 중독이 되어서 부작용이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혈압약은 한번 처방받으면 죽을 때까지 빠지지 않고 매일 복용하면서 왜 우울증약에 대한 선입견은 부작용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우울증상이 1-2달 지나면서 가라앉으면 그때가 재발방지를 위해서 오히려 더 약물의 작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저는 환자분들에게 약물을 되도록 소량만 처방하려고 합니다. 내 가족에게 처방하듯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약물치료가 끝나고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으려면 약을 빨리 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치료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우울하고 눕고만 싶어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챙겨 먹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운동이 아무리 우울증에 좋다고 해도 운동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그렇게 하다 보면 몸이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몸과 마음은 그만큼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감기가 걸리면 감기약이 필요하고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이 필요하듯이 우리 뇌의 신경전달 물질이 고갈되어 우울해진다면 항우울제 복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울증 솔루션, 생각을 새롭게 하라

정신의학적으로 우울증 치료는 인지치료가 대세인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뇌의 호르몬을 변화시키다는 이론입니다. 우울한 감정을 회복하려면 먼저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좋은 것들만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할 것이 없어도 감사하기로 선택하고 바라는 것을 감사함으로 말하게 되면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치료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생활일지를 주어 생활습관, 수면습관을 항상 매일 점검하고, 감사일기를 쓰게 하여 감사할 것을 생각해내어 적어오는 숙제를 내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할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가져갔던 분들이 ‘하늘이 높고 공기가 맑아서 좋다.’라는 당연하고 사소한 일들까지도 기록해오면서 기뻐하기도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기록하는 인지치료 일지를 주기도 하는데, 왜곡된 생각들은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아, 나는 절대로 우울을 이길 수 없어. 도대체 앞이 보이질 않아.’ 이런 생각들도 긍정적으로 대체해야 나가야 합니다.

실직, 실연, 이혼, 시험실패, 파산, 사별 등 내가 겪은 일이나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이 찾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피치 못하게 생긴 일들에 대해 충분히 애도하다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는 인생의 섭리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빠지는 생각의 왜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피치 못하게 생기는 힘든 일들을 내 잘못으로 여기고 또 한 번 비난의 화살을 쏩니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의 일들은 수학적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생긴 일들이지, 모두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제발 자신을 향한 비난의 두 번째 화살을 쏘지 마세요. 나를 위로해주는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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