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비만클리닉을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상담을 하다 보면, 살이 쉽게 찌는 여성분들의 공통된 특징들이 보이는데요. 내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려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건강한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요. 산속에서 혼자 살면서 아무런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립하는 자연인의 모습에 어떤 힘이 느껴졌습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위해 하루 종일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자연인은 외부의 메시지나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에 대한 뿌듯함을 먹고 자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장 모임이나 친구들을 만나면서 남들이 안 먹으면 싫어할까 봐 혹은 다이어트하는 것을 알리기 싫어서 그냥 따라먹는 분들 있어요. 자신의 욕구는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들은 결국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닌 거예요. 그들의 내면에는 자기를 평가 절하하는 강력한 비평가가 있어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어요.
 

사진_픽셀


‘착한 여자’에 대한 정의는 남들에게 칭찬받으려고 애쓰느라 자기 모습이 사라지는 것도 감수하는 여자예요.

이들에게 필요한 처방은 나를 살찌게 만드는 음식들과 멀리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 거절할 때와 승낙할 때를 아는 균형, 내가 남을 도와주듯이 나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현실감,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남들과도 꾸밈과 과장 없이 이야기하는 대화, 그리고 완벽주의를 청산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예요.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결국 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니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살찌는 습관에 ‘No!’라고 거절하지 못해요. 남자 친구를 좋아하니까 그 사람에게 맞춰서 같이 늦게 먹게 돼서 살이 10kg 넘게 쪘던 분이 있었는데, 살이 그만큼 찌고 나니까 남자 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과 나의 바운더리를 지키지 않고는 ‘착함’이 결코 착함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가 남자 친구를 만난 이후 잘못된 식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살은 저절로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나라 문화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이죠. 인생의 모든 것을 조절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내 몸에 취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요.

식사를 하는 매 순간 누구랑, 어디서, 무엇을 얼마큼 먹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시간이 오는데, 그때마다 이 말을 꼭 떠올리세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내 몸에 유익하지는 않다.’

배고프지 않은데도 자꾸 이것저것 먹으려고 하는 것은 배고픔이 아니라, 갈망(Craving)이에요. 갈망하는 존재로 태어난 우리들에게 심리적 공허함은 음식으로 채워도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아요.

음식 맛도 느끼지 못하고 허겁지겁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리듯이 흡입을 한 후에 배가 부르다고 자책하고 후회하는 분들도 많아요. 살이 찔까 봐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해하다가 많이 먹고 나서는 거울 앞 자신의 몸매나 외모를 비하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죠.

자존감의 핵심은 자기 조절감과 자기 결정권인데 심리적인 허기를 채우는 법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스스로 조절에 실패했다는 생각과 선택을 잘못했다는 자기 비하로 나를 신뢰하지 못하게 돼요.

 

다이어트는 결국 나를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게 되고, 감량된 체중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어요.

<자존감 식사>에는 내 몸과 마음이 요구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섬세함과 내 몸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 그리고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습관들을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성실함이 필요해요.

하루에 먹는 음식을 언제,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먹을 것인지 계획을 하면서 식사일기를 매일매일 적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일상을 조절하고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생기게 될 거예요.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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