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신홍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대를 다닐 때 기숙사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과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다.

내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물리학과는 천재들이 지원하였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천재들, 세계 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도 나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나는 그들이 무척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그 친구 방에 놀러 가 보면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보다 쉬거나 낮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밤잠은 말할 것도 없이 잘 잤다. 나는 속으로 저렇게 잠만 자면서 공부는 언제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더니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머리가 맑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공부하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은 최고의 두뇌 효율로 공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중하는 것이다. 충분히 자고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공부한 1~2시간이,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8시간 동안 책상을 지킨 것보다 더 머리에 남는 것이 많다는 것은 자신들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천재가 될 수는 없지만, 천재의 요령을 배울 수는 있다.
 

사진_픽사베이


잠을 많이 잘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수면을 취하면 창조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는 여럿 있다. 즉 8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퍼즐을 더 잘 푼다는 연구결과도 그중 하나이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 뇌는 깨어 있는 동안 얻어진 정보를 정리한다. 즉 필요한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린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적당한 장소에 저장한다. 즉 관련이 있는 기억장소에 저장한다.

예를 들어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을 둘러보았다면 자는 동안 그 정보는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기하학 관련 지식이 저장되어 있는 곳 인근에 저장된다. 그리고 효율적인 기억을 위해서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되고 중복되는 것은 삭제된다.

 

앞서 퍼즐을 푸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퍼즐 문제를 받고 한동안 고민한 후 잠을 잔다고 하자. 그럼 퍼즐 문제에 대한 기억을 적당한 기억장소(뇌 부위)에 저장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련 지식들을 일깨운다. 관련 지식들과 퍼즐 문제들이 뇌 속에서 함께 만나 섞이면서 지식이 문제에 적용된다. 그리고 잠에서 깬 후 불현듯 그 문제의 답이 생각나는 것이다. 만약 문제만 주고 잠을 재우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을 습득한 후 잠을 자면, 새 지식이 우리 머릿속의 기존 지식과 만나면서 그 기억이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리고 기존 지식들도 새 지식의 도움으로 좀 더 오래 머릿속에 남을 수 있게 된다. 공부한 후 잠을 자면 머리가 좋아진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배울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자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디오 북 등을 이용해서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잠을 자고 그다음 날 그 내용이 모두 기억이 된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외부 자극들은 시상이라고 하는 뇌의 관문에서 걸러지고 대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뇌가 그 정보를 받아들여 분석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드물게 자는 중에 들었던 내용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잠을 자다가 깨서 그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기기억에 있던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옮겨갈 만큼 그 시간도 충분히 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 무엇인가를 배울 수는 없지만, 깨어 있는 동안 잘 배우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도 밤에 잘 자야 한다.

잠을 자는 동안 뇌신경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여러 신경전달 물질이 합성된다. 그리고 낮 동안 얻은 지식들이 단기기억 저장소에서 장기기억 저장소로 옮겨가는 일이 일어난다.

 

- 코골이 하지불안증후군 불면증 기면증에 대한 종합보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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