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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건 식은 죽 먹기야”

“.... 식은 죽이 어디에 있어요?”

 

‘주말동안 알차게 보내세요’ 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알차게’를 부모님께 사달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재개그’가 아닙니다. 바로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죠. 이 아이들은 은유나 뉘앙스, 이야기에 담겨있는 속뜻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유머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이 자신에게 비꼬듯이 말하는 긍정문 형태의 반어적 이야기도(‘그래, 너 잘났다’, ‘오 대단한데’)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같은 행동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감격에 겨워 우는 모습을 보고 ‘슬퍼서 우는구나’라고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비웃음과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일명 ASD(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도 부르는 이 장애는 복합적인 발달장애를 포괄적으로 이르는 용어입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상호작용과 소통에 어려움을 보이고 이상한 반복적 행동이나 특정한 물건 또는 활동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장애이지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과의 눈맞춤이나 주변 말소리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엄마랑 떨어지거나 낯선 어른이 안아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도 다른 아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울려 놀기 어려워하죠. 커가면서 부모나 친숙한 어른에게 애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또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려움을 보입니다. 언어발달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특이한 톤이나 방법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와 함께 일렬로 자동차를 줄세우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고 기계적인 양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손을 휘젓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까치발로 걷는 등의 이상한 동작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 씨네라인

지금은 과거에 비해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영화 ‘말아톤’에서 ‘백만불짜리 다리’를 가진 초원이나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했던 영화 ‘레인맨’의 레이먼드 같은 ASD 아동이나 성인들이 세상을 좀 더 특별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ASD의 유병률이 점차 높아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물론 여전히 ASD와 관련한 수많은 오해들과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치료들로 인해 ASD 아동과 성인, 그 가족들이 상처받는 사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하지만, 2015년 11월 ‘발달장애인법’ 시행 등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낮은 지능과 인지적 결손, 전형적이고 뚜렷한 자폐적 특성을 보여 특별한 치료나 교육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능이나 언어발달은 비교적 정상이면서 자폐적 특성이 경미하거나 비전형적이어서 이들에 대한 이해나 개입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능 특히, 언어성 지능이 높아 풍부하고 복잡한 언어표현이 가능하거나, 수동적이고 피상적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놀이에 참여함으로서 자폐적 특성이 좀 더 늦은 나이에 발견되거나 간과되기도 합니다. 바로 소위 ‘아스퍼거 증후군’ 혹은 ‘고기능 자폐증’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2013년에 미국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이 새롭게 개정되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공식적으로 사라진 진단명이 되었고 ’고기능 자폐증‘ 역시도 공식적인 명칭은 아닙니다. 개정 전에는 구분되어 있던 여러 하위진단명들이 지금은 ’자폐스펙트럼장애(ASD)'라는 진단명으로 통합된 것이죠. 그렇지만 일반 자폐증과는 달리 언어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과 성장하면서 언어의 지체가 적거나 거의 없다는 점, 사물이나 물건의 특정 부분에 유독 집착을 보이는 일반 자폐증과 달리 역사, 지리, 인문학, 천문학 등 지적인 영역에 대한 집착 성향을 보인다는 특이점 때문에 여전히 ’아스퍼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꼬마교수‘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전공자 이상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ASD에 수반되는 비상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어투나 내용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처럼 조숙하거나 로봇처럼 단조롭고 감정적 색채가 결여된 경우가 많고 몸짓이나 표정 등 비언어적인 소통에 미숙합니다. 또 상대방의 몸짓과 얼굴표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들에게 이 세상은 의문투성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상대방의 얘기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지능이 높다 하더라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있는 ASD 아동에게 있어 “이리와 봐”란 말은, 아이가 예뻐서 웃으며 하는 말이든, 아이에게 화가 나서 허리에 손을 얹고 하는 말이든, 똑같은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ASD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감정을 헤아리는 것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에게 월경주기를 묻는다거나 타인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경우처럼 분위기나 맥락, 상대방 기분을 고려하지 못해 부적절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애매한 상황에서 이들을 돕기 위해 제공하는 미소나 손 흔들기, 찡그림 등의 미묘한 사회적 힌트는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죠.

 

말투나 몸짓이 어색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늦다보니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예의 없고 특이한 아이로 취급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주변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중,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ASD 아이들은 지능과 언어기능이 정상인 경우가 많은데, ASD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엔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본인이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친구를 사귀는데 반복해서 실패하게 되고, 학교에서는 점차 추상적이고 복잡한 학습과제를 요구받게 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하거나 우울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우울의 임상 양상은 비전형적일 수 있어서 규칙적인 것에 더 매달린다거나 또는 더 고립되려고 하거나 제한된 관심사에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학습이 부진하고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운 이유를 단순히 사회성이 좀 떨어지거나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과각성으로 인한 충동 행동이나 자살시도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AS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담겨있는 정서적 의미를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들에게는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특별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화 말아톤을 보았다면 초원이가 ASD 진단을 받았을 때 병원에서 행동교정 치료라고 설명하면서 여러가지 사람 표정 그림을 가지고 어떤 감정을 띤 표정인지 가르쳐 주었던 장면이 나온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반사적으로 알 수 있게끔 비언어적인 행동까지도 학습을 통해서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죠. 이와 함께 일상적 패턴의 유지하고 변화에 대한 예고하고 스트레스나 불안 등의 증상을 감소시키는 방법도 알려줘야 합니다.

 

동시에 AS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교육과 발전에 적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갖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구체적인 순서나 규칙을 이해하는 능력, 암기능력, 컴퓨터 기술, 음악이나 미술적 재능, 시각적 사고력, 좋아하는 활동에 대한 극단적인 집중력, 뛰어난 방향감각, 그리고 가끔은 지나쳐서 해가 될 정도의 정직함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예로 아이작 뉴턴이나 앨런 튜링 같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지나치게 ASD를 ‘천재성’과 연결시키는 것도 적절하지 않지만, 이들에게 자긍심과 만족을 줄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이 터부시되거나 간과되어서도 안됩니다.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상호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능력의 부족하다는 것은 결코 ASD를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정서적으로 괴로워야 하는 이유가 될 순 없습니다.

ASD는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한 속성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펙트럼(Spectrum)'이라는 용어가 포함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능과 언어 능력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어려움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AS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익숙하기만 했던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시각에 새로운 렌즈를 장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성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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