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실제 상담 내용을 재가공하여 구성한 내용입니다. 내담자의 동의를 얻어 작성되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상담과 비교해 설명을 많이 덧붙였습니다. 실제 상담의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미리 밝힙니다.)

 

이번 연재의 내용은 고등학교 여학생과의 상담 내용입니다. 학교 음악 시간에 있었던 일이 너무 짜증이 나고 서러웠다며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음악 시간에 노래를 불렀고, 음악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은 한 번에 pass를 해줬는데, 자기만 계속 다시 했다는 일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노래가 왜 이렇게 잘 안 되지?’ 하면서 다시 시도를 했는데, 몇 번 반복이 되니까 너무 서러워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울게 되었고, 음악 선생님도 미안해하고, 친구들도 위로를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네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조금 못 할 수도 있는 건데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는데,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더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왜 자기한테만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상담 시간에도 서러운 듯이 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상담 과정 중에 감정을 자극하는 특정 문구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왜 나만 가지고 그래.’였습니다. 그리고 상담 과정 중에 ‘나만’이라는 단어를 계속 반복해서 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돌려드리고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상담자: 30여 분간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떤 단어를 많이 쓰신 것 같나요?

내담자: 모르겠어요.

상담자: ‘나만’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할 때 어떤 말을 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

내담자: 잘 모르겠어요.

상담자: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말을 하시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내담자: (침묵)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저한테 1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거든요. 여동생이 저랑은 성격이 좀 달라요. 저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데 반해 여동생은 살갑고 여우 같은 면이 있어요. 가족들이 동생하고만 친해요. 엄마도 동생만 챙겨줘요. 엄마가 저랑 성격이 비슷하시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활발한 성격의 동생이 더 좋으신가 봐요. 그래서 전 늘 소외되었던 거 같아요.

예전에 이랬던 일도 있었어요. 제가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가족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거에요. 저도 빨리 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가족들이 웃음이 딱 그치고 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때도 얼마나 서럽던지. 유치하고 그래서 말은 못 했는데, 속으로는 되게 속상했었어요.

가족들 사이에서 항상 저만 소외되었던 거 같아요. 제가 이 집 식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가족 증명서까지 떼 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실제 가족이 맞는 거에요. 그래서 더 화가 났어요. 나도 엄마 딸이고, 내 동생도 엄마 딸인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 이해도 안 되고 서럽고 화만 나더라고요. 음악시간에도 비슷한 감정이었던 거 같아요. ‘나 가지고만 그런다.’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화가 나고 서럽더라고요.
 

사진_픽사베이


상기 패턴이 현재 대인관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연재에서 던져드리고 있는 메시지가 ‘과거에 형성된 심리 기제가 현재에도 나도 모르게 반복되고 있다.’이니까요. 나도 모르게 반복되고 있는 심리 기제를 내가 알아주어야, 그제야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기 시작하는 건 당연지사이겠지요? 상기 내담자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내담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내담자: 제가 대인관계에서 특별히 힘들어하는 상황이 있는 거 같아요. 3명이 있는 상황이 제일 힘들고 짜증이 나는 거 같아요. 저 빼고 둘이 친하다는 생각이 들 때 너무 힘이 들고 스트레스인 거 같아요. 저는 A라는 친구랑 친하게 지내고 싶고, 그 친구가 저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A랑 B가 친한 것처럼 보이면 저는 그게 너무 불편해요.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기는 했어요. 저는 A라는 친구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A가 B한테 조그만 선물을 챙겨주는 거예요. B 친구의 생일도 아니었고, 특별한 날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둘만 뭔가를 주고받으니까, 그게 너무 질투가 나고 화가 나더라고요. 그 날 이후로 그 친구들을 만나면 불편하고 말도 잘 안 하게 됐어요. 저는 그 B라는 친구가 너무 싫어요. 너무 여우 같고 가식적인 친구예요. A가 B 친구를 챙겨준 것도 분명 B가 A한테 살랑살랑 뭘 했을 거에요. 그러지 않고서야, A가 B한테 선물을 챙겨줄 일이 없거든요. 저는 B 친구를 보면 진심이 느껴지지가 않아요. 다 가식적인 거 같아요.

 

상담과정에서 ‘여우 같고 가식적인 년’이라는 말이 상당히 공격적이고 내담자의 감정이 많이 실린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우 같고 가식적이다.’라는 것에 대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더 구체화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정치질을 잘하는 애’ 정도로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치질’이라는 표현도 상당히 공격적이고 감정이 실린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실 내용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친구들한테 살갑게 잘하고 대인 관계가 좋은 친구들을 두고 내담자는 그렇게 표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담자는 부정적인 라벨링을 붙여놓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고 대인 관계가 좋은 것은 본인이 바라는 모습이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하였지만, 내담자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가식적으로 사람을 사귀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담자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유 연상을 이어가도록 두었습니다. 자유 연상을 이어가던 내담자는 결국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을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여우 같고 가식적인 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결국은 ‘여동생’ 이야기로 끝이 났네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세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내담자는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을 여우 같고 가식적인 년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에 대한 공격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내담자는 결국, 엄마와 여동생과 나 사이에서 겪었던 여러 심리적인 패턴들을 현재 대인관계에서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 관심과 사랑을 원하고, 하지만 그것이 좌절되고, 그 사이에 여동생이 있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여동생은 엄마한테 살갑게 잘하고 있고, 엄마는 여동생과 더 친한 거 같고, 그래서 여동생이 질투 나고, 나만 소외당하는 거 같고, 여동생이 밉고...” 이런 패턴들이 나도 모르게 계속 반복되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상기 기술에 ‘엄마’를 ‘A 친구’로, ‘여동생’을 ‘B 친구’로 대치를 하면 현 상황과 데칼코마니처럼 흡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A 친구’는 그냥 있는 그대로 ‘A 친구’로만 보여야 하고, ‘B 친구’도 그냥 ‘B 친구’로 보여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렸을 때 형성된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반복 작동되고 있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here and now’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제 해결의 초점을 ‘A 친구’, ‘B 친구’ 사이에서만 찾다 보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there and then’입니다. 어렸을 때 ‘엄마’와 ‘여동생’ 사이에서 겪었던 그 수많은 감정들의 오르내림들을 봐주고 해결해주어야만 ‘here and now’가 조금씩 해결되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there and then’에서 형성된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반복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here and now’에서 ‘가짜이유들’을 찾는 노력들을 멈추고, ‘there and then’에서 형성된 ‘진짜 이유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려는 연습. 20 연재 동안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의 진심이 닿을 수 있을 때까지 연재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저는 이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이미 100여 분도 무료 상담을 통해 약간이나마 그 길을 보아오셨습니다. 그 여정을 계속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 본 글은 이일준 정신과 전문의가 Transmind 마음변화 연구소에서 무료 상담했던 내용을 각색한 글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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