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달리고 달려서 19번째 연재네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내용을 거칠게나마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은 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there & then (과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진짜 이유’

 무의식(인지하지 못한 채 작동)

 here & now

 ‘가짜 이유’를 만들어 냄

 이것이 ‘진짜’인 줄 착각함.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연재를 읽어 오셨던 분들은 이 표를 통해 조금 정리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재를 못 읽으셨더라도 이번 연재를 읽는데 지장은 없으시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은 표의 아랫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here & now’에서 ‘가짜 이유들’을 잘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게 ‘진짜’인 줄로 착각을 잘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왔던 건 명백하겠지요. ‘가짜 이유’를 ‘진짜 이유’로 착각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뇌과학에서 유명한 실험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로저 스페리라는 분이 했던 좌우뇌 분할 환자에 대한 실험입니다. 좌우뇌 분할 환자에 대한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간질 환자의 경우, 뇌의 일부분에서 전기 신호가 발생하면 그 신호가 뇌 전체로 퍼져서 모든 뇌가 작동을 멈추게 되어 의식을 잃고 근육 경련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치거나, 심할 경우 호흡근을 마비시키면 생명에 위협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과거 간질을 치료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하였습니다.

그중에 하나의 방법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고 있는 뇌량이라는 구조물을 절단하는 수술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왼쪽 뇌에서 전기 신호가 발생하더라도 뇌량을 절단하면 오른쪽 뇌가 살아있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일견 이 수술은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로저 스페리라는 분은 뇌량도 어떤 역할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좌우뇌 분할 환자들을 모아서 여러 실험들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실험 중 하나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시각의 경우 좌측 시야는 우뇌에서 정보처리를 하고, 우측 시야는 좌뇌에서 정보처리를 합니다. 그래서 좌우뇌 분할 환자들에게 좌측에 시각정보를 주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스페리가 관찰을 하였습니다. 좌우뇌 분할 환자들에게 좌측 시야에 ‘걸으시오.’라는 명령어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환자는 걷기 시작합니다. 명령어를 봤기 때문이죠. 그때 연구자가 걷고 있는 환자를 잡아서 물어봅니다. ‘지금 왜 걸으시는 거죠?’라고요. 이때 환자들은 ‘물이 먹고 싶어서요.’, ‘추워서 문을 닫고 싶네요.’라는 등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사진_픽사베이


일반적으로 언어를 중추하는 뇌는 좌뇌입니다. 그런데 좌뇌 입장에서 보면, ‘걸으시오.’라는 문구를 본 정보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드렸듯이 좌측 시야는 우뇌가 관장하기 때문에 ‘걸으시오.’라는 문구는 우뇌만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뇌량이 살아있다면 그 정보가 좌뇌에 도착을 해서 좌뇌도 그 정보를 받아들였었겠지만, 좌우뇌 분할 환자는 그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좌뇌는 자신이 걷고 있는 ‘진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왜 걷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해야 할 텐데,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유’가 없는 것보다 ‘가짜 이유’라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걷고 있는 것을 합리화할 만한 ‘가짜 이유들’을 만들어내서 둘러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것이 진짜라고 착각하고 믿습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둘러대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말한 이유가 진짜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환자니까 그렇지 않냐고요? 그렇게 믿고 싶으시다면,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던 실험을 하나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연구자들이 ‘똑같은’ 팬티스타킹 4개를 준비해서 차례대로 실험참여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4개 중 어느 팬티스타킹의 질이 가장 좋은지를 물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열심히 만져보고 관찰하여 궁리 끝에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다양한 분포가 있었지만, 4번째 팬티스타킹의 질이 가장 좋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최신 효과라고 하는 현상인데요. 사람은 가장 최근에 본 정보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생생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향이 높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연구자들이 추가적으로 질문을 더 하였습니다. 자신이 고른 팬티스타킹이 다른 팬티스타킹에 비해 더 좋은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더 쫀쫀하게 잘 만들어졌다’, ‘더 촉감이 부드럽다’, ‘색상이 더 고급스럽다’는 등 온갖 이유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누구도 ‘모든 팬티스타킹은 동일한데 맨 마지막 팬티스타킹이 최신 효과로 인해서 더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차라리 ‘비슷한 거 같아서 모르겠습니다’라고 해도 다행일 뻔했는데 그렇게 대답하는 분들도 없었습니다. 자신만의 논리를 세워 그것이 진짜인 양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환자이었냐고요? 아니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분들과 똑같은 일반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 실험 상황에 계셨다면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진짜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가짜 이유’를 잘 만들어내는 동물입니다. 사실 인간이 살면서 지도가 없는 것보다 틀린 지도라도 있는 것이 사는 데 유리할 수도 있었거든요. 사회가 형성되어 합의에 이르는 문제 등을 진화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기는 한데요, 거기까지는 너무 본류에서 벗어나므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루어보도록 하죠.

여하튼 인간은 이러한 동물입니다. 늘 ‘진짜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짜 이유’들을 만들어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착각하죠. 그 만들어낸 ‘가짜 이유’가 ‘진짜’라고요. 이런 것들이 실험 상황에서만 그렇다면 다행인데, 우리 삶 곳곳에 그러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입니다. 19회의 연재 동안 그러한 것들을 살펴봤던 것이고요.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조금 이어가 보았으니까 다시 삶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다음 연재부터는 또다시 상담했던 사례에 대해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내 이야기일 테니까요.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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