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나 사회학에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어떠한 주장이나 믿음을 사실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개념으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은 일진이 나쁠 것이라는 믿음이 당신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이는 실제로 일진이 좋지 못한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환자들이 투여받은 약이 비록 가짜 약일지라도 진짜 약을 먹는다는 믿음 자체가 실제로 건강을 개선시킨다는 위약효과(placebo effect)와도 비슷하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뇌 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웨이져 교수(Wager)와 그의 연구팀은 우리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 또한 자기실현적이라는 결과를 자연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r)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34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특정한 기호(네모나 세모 따위의 도형 모양)를 낮은 온도 또는 높은 온도와 연관 짓도록 학습시켰다. 학습의 목적은 기호로 대변되는 온도를 고통과 연관 짓기 위함이었다.

연관 학습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팔뚝이나 다리에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열 자극을 가할 수 있는 패드를 부착하고 자기 공명 장치(fMRI) 안에 들어갔다. 연구팀은 장치 안에 있는 참가자들에게 그들이 학습한 기호들을 다시 보여주면서 그것들이 고통스러울 것(높은 온도)인지 아닌지(낮은 온도)에 대한 등급을 매기도록 하고 이어서 실제로 열 자극을 가했다. 그다음, 그들이 받은 자극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에 대해서도 등급을 매기도록 하였다.
 

사진_픽사베이


실험 결과 참가자들이 높은 온도에 대한 기대를 가질수록 뇌의 위협과 공포에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 자극을 받았을 때 고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더욱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하면 참가자들이 (연관 학습을 통해) 어떠한 경험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 뇌는 더 큰 신경학적 통증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커진 통증 반응은 더욱 그 경험이 고통스럽다는 기대를 갖는데 기여하는 일종의 악순환, 즉 양성적 되먹임(positive feedback)을 불러일으킨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참가자들이 고통에 대해서도 확증편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믿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이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다. 참가자들이 한번 강한 통증(자극)을 경험하면, 그다음 번에도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가지지만 그들의 기대에 반해 강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참가자들의 고통에 대한 기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환자들이 치료 결과나 통증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면 실제로 환자의 치료나 회복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우리의 믿음이나 기대가 실제로 우리가 겪는 통증에 대한 경험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정신과 신체는 생각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참고

Pain is a Self-Fulfilling Prophecy
https://www.technologynetworks.com/neuroscience/news/pain-is-a-self-fulfilling-prophecy-311858?fbclid=IwAR0QK6raAH6g1hRgYulEPlGO462S2jiSDJhbsJDHJGRYTtqyOaVZLE6Rf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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