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생존기 (2) “이모님”과 헤어지기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김정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떻게 만나서 서로 적응해온 사이인데, 어느 쪽의 사정 때문이든 미운 정 고운 정 쌓인 도우미와 이별할 순간은 찾아온다. 아이가 커서 보육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장시간 지낼 수 있게 되어 이별하는 경우도 있고, 도우미에게 일방적으로 결별 통보(!)를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도우미가 다른 동료의 근무 조건에 대한 이야기만 얼핏 꺼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 워킹맘의 마음이다. 1년 이상 꾸준히 한 도우미와 지내온 것만으로도 다른 워킹맘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첫째, 둘째 아이까지 함께 키우며 4-5년 이상 함께 한 도우미와 이별하는 것은 아이는 물론이고 엄마에게도 커다란 심리적 사건이다. 그래도 평생 함께 할 수는 없는 사이이기에 결국은 헤어져야 할 도우미와의 이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사진_픽셀


1) 짧은 기간에 자주 도우미가 바뀌는 상황

워킹맘이 가장 힘든 시기가 처음 도우미와의 생활을 세팅하는 시기에 도우미가 그만두고 새로운 사람을 면접하고 뽑아야 하는 때이다. 도우미를 채용해본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결국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엄마가 붙어있는 수밖에는 없다. 출산 후 복직을 앞둔 상태에서는 미리 몇 달 전부터 도우미를 물색해야 하고, 도우미가 우리 집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만두겠다는 상황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에 복직하기 적어도 한 달 전에는 도우미와 생활하며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어느 정도 함께 생활한 도우미가 갑자기 그만두는 상황

이 상황도 정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다. 어린 자녀를 돌봐주는 사람이기에 아이가 도우미에게 어느 정도 정이 들었다 싶으면 웬만하면 현재의 도우미에게 정착하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니, 아무리 도우미에게 잘해주고 정이 쌓였다고 해도 이런 일을 100%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우미와의 관계에 대한 점검을 늦추지 말자. 도우미마다 장단점이 있듯이 각각의 가정도 장단점이 있다. 급여가 가장 중요한 조건인 도우미도 있고, 근무 강도나 휴가, 아이와의 친밀감, 부모에게 존중받는 느낌 등 도우미마다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요소가 다르다. 지금 우리 집 이모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부모가 충분히 채워주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항시 필요하다. 단점이 없는 직장은 없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 있는 직장을 떠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부모 또한 요리를 잘하는 도우미, 청소를 깔끔하게 하는 도우미, 아이와 잘 놀아주는 도우미 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있을 것이다. 부모와 도우미 양측의 욕구가 맞아떨어져야 안정적으로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할 수 있으며, 자녀가 자라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이 조금씩 달라지기에 한 도우미와 7-8년씩 지내는 경우가 드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력해도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상황은 닥칠 수 있으니 부모는 항상 마음 한 켠에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휴가도 여유분을 조금은 남겨두어야 하고, 급작스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잠시라도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친인척이나 이웃, 정부에서 지원하는 돌봄 서비스, 긴급양육바우처, 시간제 민간 베이비시터 등의 정보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이웃사촌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대였다면 좋았겠지만 요즘은 부모가 오롯이 양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시대이니 말이다.

 

3) 도우미와 부모 양측이 논의 끝에 헤어지기로 결정한 경우

이유가 어느 쪽에 있든 간에 도우미와 부모가 서로 논의하고 헤어지기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동시에 결정이 된 후 실제로 헤어지기까지의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할지 난감한 경우이다.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차피 떠나기로 한 사람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나가시게 하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도우미가 자녀의 주 양육자인 상황에서는 아동학대의 경우(아이가 주 양육자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는 상황)를 제외하고는 자녀에게 이별을 미리 알리고 준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_픽셀


서로 정이 많이 든 경우, 헤어짐을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아이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이모할머니’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이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자녀의 연령에 따라 이해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몇 밤 자고 나면 할머니가 이런저런 이유로 OO이랑 같이 지낼 수 없게 될 거야. 그렇지만 할머니는 OO를 사랑하고, 가끔은 OO를 만나러 오시기도 할 거야.” 하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다.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고, 할머니가 먼 곳에 볼 일이 있어서, 다른 아픈 사람을 돌봐주어야 해서 등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되, 아이가 도우미에 대한 걱정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도우미 할머니가 아파서’라는 이유는 아이가 죄책감과 불안을 갖게 하기 쉽다. “싫어”, “안돼” 하며 울부짖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서 아이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분들도 꽤 있는데, 정말 아이를 생각한다면 부모뿐 아니라 도우미도 같은 내용으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 아이의 슬픈 마음, 싫은 마음도 충분히 표현하게 해 주고, “할머니가 가게 돼서 OO이가 너무 속상하지? 엄마도 속상하구나” 등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것이 좋다. 실제로 도우미가 연휴나 주말에 가끔씩 아이를 만나러 올 정도의 사이라면, 아이에게 그 도우미는 또 하나의 할머니, 선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실제로 도우미가 떠난 뒤에도 아이가 예전 도우미를 보고 싶다며 울거나 칭얼거린다면 “할머니 보고 싶구나, 엄마도 할머니가 보고 싶네. 할머니한테 사진 찍어서 보낼까? OO이가 할머니한테 얘기하는 동영상 찍어서 엄마가 보내줄까?” 하고 아이가 충분히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주 양육자와의 이별 자체가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게 부모가 억누르는 것이 상처가 되며, 이별의 고통과 슬픔을 부모가 받아주고 공감해주며 달래주는 것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주고 부모와의 관계를 단단하게 한다.

 

도우미를 채용하는 것에서부터 헤어지기까지 수차례에서 수십여 차례의 면접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음고생 몸고생을 수두룩하게 하는 워킹맘을 자주 만난다. 마지막 사례는 거의 이상적인 사례에 가깝기에 허탈한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고 자녀를 키우는 길에 정답은 없고, 상처 없는 영광도 없다. 나와 내 아이가 겪어야만 하는 만남과 이별이 우리의 성장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글을 읽으며 자녀의 양육을 고민하고 있는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 워킹맘이다. 자녀들이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엄마보다 친구들과 시간을 더 보내길 원하는데, 그때까지 잘 버텨보자. 워킹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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