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김정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줄 서서 어렵게 보내던 유명한 보육시설도 이제는 왠지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세상이 변해간다지만, 아직은 충분한 출산휴가, 육아휴직, 친정, 시댁 찬스 등이 모두 남의 얘기일 때도 있다. 그렇다고 둘이 열심히 벌어도 녹록지 않은 현실인데, 대책 없이 집에서 애만 키울 수도 없다. 내 아이를 직접 도맡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좋든 싫든, 내 아이를 키우면서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양육에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워킹맘에게 “이모님”-정식 호칭은 베이비시터 또는 육아도우미-은 내 아이를 맡기는 엄마 입장에서는 상전과 같은 존재이다. 도우미 입장에서도 아이를 돌봐주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필요에 의해서 서로 선택하지만, 함께 살아가고 또 헤어져야 할 '이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에 따라 아주 짧게 몇 시간만의 도움일 수도 있고, 긴 기간이 될 수도 있지만, 내 아이의 연령에 따라 꼭 기억해야 할 중요 포인트들을 고민해 본다.
 

사진_픽셀


1) 돌 전의 자녀를 돌봐주는 도우미와의 생활

3개월의 출산 휴가가 끝난 뒤 바로 출근해야 하거나 이 기간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백일도 안된 아이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 엄마들도 있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양육자와의 안정된 애착 형성이다. 아이를 주로 돌봐주는 양육자가 아이의 욕구와 불편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해주어야 아이는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애착은 꼭 엄마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며, 한 명이 아닌 여러 사람과도 맺어진다. 도우미와의 애착이 안정된 아이가 부모나 타인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아이가 도우미에게만 착 달라붙는다고 서운해하거나 내가 아이에게 잘 못해주는 부모인지 자책하지 말자. 저녁이나 주말에 퇴근하는 도우미를 붙잡고 우는 아이가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와 도우미의 관계, 도우미가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주는지는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도우미는 집안일보다는 아이의 울음이나 불편에 잘 반응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 아이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배워서 하기 어려운, 타고난 자질에 가깝다. 도우미에게 이렇게 저렇게 아이를 대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교육한다고 해서 그 도우미의 성향이 갑자기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어린이집이나 기관에 다니지 않는 갓난아이와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부모에게도 진이 빠지고 지루한 일이다. 그렇다고 어린 아기를 TV나 영상 앞에 방치하고 한눈을 파는 도우미를 양해할 일은 아니다. 도우미와 면접하고 고용하는 과정에서부터 육아가 최우선 순위임을 천명하고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반응을 잘 살펴야 한다. 함께 생활하면서도 도우미에게 아이에 대해 많이 물어보고 존중하고 배우자. 그 과정에서 도우미가 아이를 얼마나 잘 알고 케어하고 있는지 엄마가 판단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도우미와 지낼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아이를 대하려 한다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우미와 주양육자의 자리를 두고 조바심 내며 경쟁하지 말자. 아이가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자라나고, 엄마가 그 방식 안에서 아이에게 주목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준다면, 몇 년 후 엄마의 자리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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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돌 이후의 자녀와 도우미와의 생활

1~2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의 경우 대개 어린이집이나 놀이 학교에 아이가 입학하게 되면서 엄마도 다시 일을 나가게 된다. 애착이 형성되는 이 시기까지 엄마와 함께 보낸 아이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주양육자인 엄마와의 시간도 줄어든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엄마가 칼퇴근하지 못하거나 직장 어린이집이 아닌 경우(대부분의 워킹맘에게 해당된다), 양가의 조부모나 하원 도우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영유아기에는 감기나 크고 작은 병치레로 갑자기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때마다 휴가를 쓰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해도 비상시에 백업해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조금씩 말도 하고 자기표현을 하기에 도우미에 대한 아이의 만족도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씩 늘어난다. 안전 문제나 학대 등의 주요 사건을 감지할 수 있어 돌 전에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에 비해 안심되는 면도 있지만, 반면 주양육자와의 분리 불안이 심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간 아이를 주로 키워온 엄마를 직장으로 떠나보내기를 힘들어하고 새로운 도우미와 정을 붙이기도 쉽지 않다. 낯가림이 적은 아이라 할지라도 엄마가 퇴근한 뒤에는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으니 입주도우미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엄마의 피로도는 그다지 낮아지지 못한다. 직장에서 집으로 출근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때다.

세 돌이 넘어가면서 도우미가 도와줄 수 없는 또 하나의 육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바로 훈육이다. 좋은 도우미를 만나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주고 맞춰주어 안정된 애착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이 시기부터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일을 구분하고, 아이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는 순간들이 생긴다. 아이가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 이를 견디고 끝까지 “그건 안 된다”라고 아이를 납득시키고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가 거의 유일하다. 조부모도 어린 손주의 생떼에 넘어가기 십상인데, 가사까지 쌓여있는 도우미가 아이에게 차분하게 훈육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일에는 밤늦게 잠깐, 주말에만 만나는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고 훈육하려면 아이와의 편안한 애착 관계가 필수다. 이날 이때까지 도우미 손에만 아이를 맡겨두고 있던 부모가 갑자기 “이제 너도 이런 행동은 할 나이가 아닌데 왜 이러니! 하지 마!”하고 엄격하게 혼만 낸다면 아이는 부모를 무서워하고 피하게 될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열심히 반응하며 애착을 쌓아온 부모가 단호하게 훈육한다면 아이도 부모를 믿고 순응하며 세상의 규칙을 배워나갈 수 있다.

세 돌 전까지의 양육과 애착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가장 중요함은 아동발달에 있어서 진리이지만, (그전까지의 주 양육자가 아이를 안정적으로 잘 키웠다는 전제 하에), 의외로 부모가 직접 아이와의 접촉 시간을 더 늘려야 하는 때는 오히려 세 돌 이후일 수 있다. 이 시기의 워킹맘은 도우미에게 맡긴 가사에 대해서는 마음에 좀 차지 않더라도 내버려두고 아이와의 시간과 관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엄마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점차 생기기 때문이다. (대여섯 살이 되면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놀게 하기 위해 다른 엄마들과 관계 맺기 등의 새로운 과제들이 생긴다. 이 또한 엄마가 아니면 해주기 어려운 것들이다. 주중에 직장 때문에 어렵다면 주말에 해도 된다.)

학령기 이후에는 아이와 부모 간의 언어 소통이 좀 더 수월해지고, 스케줄에 따라 아이들을 이동시키고 간식, 식사를 챙겨주는 것으로 도우미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에 도우미와 아이 사이의 관계는 큰 이슈가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전까지 아이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느냐에 따라 아이와 부모 간의 소통의 질은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된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 기반이 튼튼하지 않다면 그 위의 건축물이 건실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히 자녀와의 관계라는 피라미드를 쌓아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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