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이혼한 아들과 함께 사는 부모입니다. 처음에는 이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래서 사정을 들어보니 참담했습니다. 집에 늘 술에 취해서 들어왔고, 간혹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집 안에서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고요. 또 술에 취해 집이나 집 근처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욕을 했다고도 하고요. 더 만취하면 연락이 두절됐고, 그런 날은 집에 들어와서 집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지만, 미안하다는 말만 할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네요. 심지어 회사에도 결근하고요.

가족들도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혼을 한 것을 어쩌겠습니까. 가족들은 아들이 이혼 후 마음의 상처가 염려되어 최대한 편하게 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오히려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도 대부분 결혼해서 자주 못 만나는 것 같습니다. 퇴근하거나 휴일에는 방문을 잠그고 무얼 하는지 거의 혼자 있으며, 방안은 거의 정리를 안 해서 어지럽고, 가끔 방에서 안주와 술병도 나오고, 가족들과 거의 대화도 안 합니다. 스스로 고립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사소한 잔소리라도 하면 대꾸도 안 하거나, 가끔은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대들어 무섭기도 합니다.

어째서 이럴까요? 너무 답답하고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알려주신 내용만으로도 아들 분은 알코올 사용 장애, 즉 알코올 중독으로 진단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조금 의아한 것은 가족 분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믿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들 분과 함께 살지 않더라도, 직장에 가기 어려울 정도의 상태라면 부모님이 눈치챌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아들 분이 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가족 분들도 적절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알코올 사용 장애의 경우, 본인도 또 주변 사람들도 뭔가 힘든 일이 있어서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니 힘든 일이 없으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술을 마시기 위한 구실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경우가 더 흔하죠.

“당신이 스트레스를 줘서 술을 마신다.”
“직장이 힘들어서 술을 마신다.”

이렇게요. 없는 사실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는 술을 마시죠. 하지만 알코올 의존장애는 자신이 술을 마시는 행동 자체를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병이며 치료받아야만 합니다.

질문자 분도 아드님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편하게 해 주고 있다고 하셨죠.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가 됩니다. 편하게 지내다 보면 마음의 상처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알코올 사용 장애가 나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술을 장기간, 많은 양을 마시다 보면 간이 망가진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망가지는 것은 간뿐만이 아닙니다. 술은 지방을 잘 녹여서, 기름으로 얼룩진 식탁을 닦을 때 소주를 몇 방울 떨어뜨려 닦으면 효과가 좋죠. 우리 몸에도 지방으로 이루어진 장기들이 있습니다. 뇌와 고환입니다. 오랜 음주는 뇌와 고환을 모두 망가뜨려, 사람의 인격 자체를 변하게 하며, 성적인 기능에도 문제를 일으키죠. 둘 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죠.

 

술을 마시는 본인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는 이미 아버님도 이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음주자 당사자만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 아들 분에 의해 아버님을 포함한 가족 분들도 '공동의존'이라고 불리는 병적인 상태가 되죠. 알코올 중독인 아들 분을 보면서, 그의 운명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들 분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나,  모든 일을 본인 탓으로 돌리거나, 아들 분의 음주 행동을 자신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공동의존 상태입니다. 알코올 중독 자체를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알코올 중독인 상태를 방임하며 유지시키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왜곡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집니다. 알코올 사용 장애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망가뜨리는 방식이죠. 알코올 중독자와 함께 삶이 일그러지니까요.

아드님께 먼저, 술을 많이 마셔서 건강이 걱정된다는 것을 알리시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상담을 받을 것을 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반발이 있다면, 일단은 일반 병원에라도 함께 가세요. 일단은 병원에 방문해서 혈액검사 등 검사를 받고, 그다음은 정신병원에서 간단한 상담을, 그다음은 적극적인 치료를 하게 단계별로 유도하는 방법이 마찰은 덜 합니다.

만약 아들 분의 반발이 너무 심하다면, 저는 알코올 전문 병원에 보호의무자 동의 입원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당장 관계는 틀어지지만,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집 근처 알코올 전문 병원에 동의 입원을 하시고, 주치의와 상의해서 짧은 시간 여러 번 면회를 하세요. 아들 분은 동의입원을 하는 순간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실 텐데,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주 얼굴을 보면 그런 느낌을 줄여줄 수 있고, 추후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치료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가족을, 치료받게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아들 분의 인생은 아직 길고, 치료를 받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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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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